누가복음 18:9-12 예수께서는 자신이 재림하실 때 찾으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그 중 바리새파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향해 서서 기도했는데 그의 기도는 자기 자랑과 남의 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며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신속하게 응답하실 것인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런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을 얼마나 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이어지는 비유도 역시 주님 재림하실 때 찾으시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 중 오늘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믿음은 주님 재림하실 때 찾지 않으시는 믿음이다.
9절은 "그런데" 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이 비유는 8절에서 말씀하신 인자가 다시 올 때 찾을 믿음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주님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는 참 신앙이고 어떤 것이고 반대로 불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이 비유를 통해 구별하라는 것이다.
이 비유는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준 것이다. 스스로 확신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확신한다는 말이다. 확신한다는 말은 갈 5:10, 빌1:14, 2:24에도 나옵니다. 바울은 주로 이 말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 라고 썼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의를 믿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을 멸시한다고 했는데 원어는 남이 아니라 나머지라는 뜻이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 다 멸시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다보면 자기 이외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다 무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신앙적으로 남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기 보다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9절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다.
자신만 의롭다고 하고 나머지는 다 멸시하는 이들은 누굴 가리킬까? 16장과 17장에서 계속 반복된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16장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17장도 이와 마찬가지 이다. 18장도 역시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하셨으므로 다음 순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차례이다. 18:1-8의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제자들에게 하신 비유라면 오늘 말씀의 비유도 역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이라고 분명히 하지 않은 이유는 제자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유대인들도 바리새파 사람들을 따라 이와 같은 믿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10절은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가 종교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 사람인지 여러분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현대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교황와 포주가 성 베드로 성당에 기도하러 갔다 " 라고 현대판으로 표현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판하시기 때문에 우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대단한 존경을 받던 신앙인들이다. 저들은 오늘날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들만큼 존경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세리는 오늘날 포주보다 훨씬 더 멸시 받던 사람들이다.
11절은 해석상 논란이 있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새번역 성경은 "서서 혼자 말로" 라고 번역했고 개역성경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라고 번역했다. 문제는 영어의 "to himself"에 해당하는 말에 있다. 이 말은 원문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 라는 뜻이다. 개역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 라는 말이 "서서"를 꾸민다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가 기도한다는 말을 꾸민다고 번역한 것이다. 영어번역들도 이와 같이 두가지로 갈라진다.
만약 "자기 자신을 향하여" 라는 말이"서다"를 꾸민다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자신만 따로 섰다는 말이 된다. ESV, NLT같은 최근의 번역들은 "따로 서서(standing by himself)" 라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 만약 "자기 자신을 향하여" 라는 말이 "기도하다"를 꾸민다면 자기 자신에게 기도했다(praying this to himself) 는 말이 된다. NASB, NJB는 "기도하다"를 꾸민다고 번역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라는 말이 서서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다는 말을 꾸미는 것이라며 그의 기도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혼잣말로 기도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 사무엘상 1:13절에서 한나가 그렇게 기도했을 때 책망을 받은 것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기도했고 특별히 바리새파 사람들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외없이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향해 서서" 라고 해석한다면 바리새파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는 뜻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해 서서 기도했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원어에서 "따로 서서" 라고 할 때는 pros라는 전치사 대신에 kata라는 전치사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5세기 대문자 사본인 Bazae Cantabrigiensis에는 이 단어를 잘못썼다고 생각하고 pros를 kata로 고쳐 놓은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원어의 일반적인 용법을 따라 직역한다면 "기도하다"를 꾸미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였다라고 번역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9절의 자기 자신을 확신한다는 말과 병행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따로 서서라고 번역한다면 이는 혼자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아침 9시 예배나 오후 3시 예배에 참석한 것 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혼자서 맨 앞에 따로 서서 기도했다는 뜻이 된다. 무리 가운데 따로 선 이유는 예배하는 사람들 중에 부정한 자가 있을까 염려해서이다. 부정한 자와 옷깃만 스쳐도 부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리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한 사람은 구별할 수 있지만 그 밖의 부정한 자는 구별할 수 없었다. 혹시나 남의 것을 빼앗는 자,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와 옷깃이 스쳐 부정하게 될까봐 따로 앞에 서서 기도했을 것이다. 이 사람의 기도 내용도 자신은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고 이 세리와도 다르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만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한다 해도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모두 정죄하고 심판하고 있는 것이기에 역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다.
이 바리새파 사람의 자랑이 12절에 계속된다. 일주일에 두 번을 금식하고 자신이 취득한 모든 것의 십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율법에는 한번 하라고 한 금식을 자신은 두 번이나 했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면 되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얻은 모든 것에 대해 전부 십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도 십분의 일을 했고 남에게 선물로 받은 것의 십일조도 했다는 뜻이다. 이는 율법의 요구이상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에는 자기 자랑뿐이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빠져있다. 이는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만 눈에 보이는 사람은 오늘 말씀에 나온 바리새파 사람과도 같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말로만 인정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