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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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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18:1-5

하나님 나라를 유포하는 중에 낙심 대신 기도하라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6. 2.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8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8:1-5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유포해야 하는 제자들은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며 끊임없이 재판관을 찾아가 간청하는 한 과부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세상 것으로 보호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버림을 당할 것이고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들은 데려감을 당한다며 제자들은 인자의재림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인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며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1절은 "그런데" 라는 말로 17장 끝부분에 나오는 인자의 재림과 연결된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인자의 재림 때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하고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한다는 내용을 말씀하신 뒤에 이해를 돕기 위해 주신 비유이다. 앞의 내용과 이어진다는 분명한 증거는 18:1절에 나온”제자들에게”라는 말이다. 원문에서는 제자들이 아니라 “그들에게”란 대명사로 되어 있다. 앞에서 제자들에게란 말을 이미 했기에 이번엔 그들에게라고 하신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마치신 뒤 비유를 설명하신 8절에 나온다. “인자가 올 때”라는 말이 바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의 핵심이 기도가 아니라 종말을 기다리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18:1절은 17장의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내용과 이어서 이 비유의 목적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믿는 자들이 몸으로 부활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그 나라가 속히 오도록 포기하지 말고 소망가운데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비유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17:11-18:8까지를 한 덩어리로 봐야 한다. 이 비유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은 네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단락은 17:11-19에 나오는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심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10명의 문둥병자가 치료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9명의 유대인 문둥병자들은 그냥 제 갈길로 갔다. 하지만 한명의 사마리아 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10명이 기적을 체험했지만 나머지 아홉은 버림을 받고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부분은 17:20-21절이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기적적인 치유와 말씀 선포를 통해 전파하던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듣던 바리새인들이 질문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다윗의 후손 중에 한 왕이 나타나서 다윗시대와 같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가 자신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질문한 것이다. 저들은 하늘의 별과 달에 놀라운 징조와 함께 한 왕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오지 않았고 왕도 아니었기에 메시야가 아니라는 뜻으로 질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질문을 한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제자들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 다음에 제자들을 향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 22절 이후에 나온 내용이다.

가르치신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메시야라며 현혹시키는 어떤 사람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리스도의 사역 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ugustine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지 계산하고 있는 자들의 숫자를 치워놓으셨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할지 chart를 준비하고 계산하려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chart를 갖고 계산하던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chart를 치우고 heart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번째 부분은 17:22-37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반포하신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이 때는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포해야 하는 때이다. 예수께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이미 반포하셨으니 제자가 된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포해야 하는 것이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우리가 유포하는 하나님 나라를 막으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마귀는 가짜를 보내 하나님나라가 널리 퍼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속지 말고 계속 하나님나라를 유포하라는 것이다. 번개가 번쩍이듯 오신다는 표현은 주의 재림은 어느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갑자기 모두가 다 알도록 오신다는 뜻이다.(24).다시 올 때는 노아의 시대와도 같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등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다 멸망한다는 것이다. 재림의 날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지만 믿는 자들에겐 구원의 날이다. 그날에는 구원받는 사람과 멸망받는 사람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묻자 시체가 있는 곳은 안보이지만 독수리가 모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우리도 징조를 보고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18:1-8절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올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핍박을 받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유포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가운데 계시록 22:20절 처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오시지 않자 크게 실망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또 제자들 중에도 주님 오실 때 믿는 자들이 부활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교부들 조차도 죽은 자의 부활이란 그들이 선포한 지식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침례 받을 때 이미 부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다 내다보시고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부활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청중들이나 누가의 청중들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는 주님 다시 오셔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그날에 믿는 자들이 부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예수님은 비유먼저 갑자기 던지신 적이 없다. 항상 어떤 논쟁이나 가르침이 나타나고 그 가르침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18:1-8 에 나타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도 역시 앞에 나온 17장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든 것도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를 잘못 오해하면 하나님도 불의한 재판관처럼 귀찮아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본문의 비교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7:11의 세상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한 것과도 같다.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올바른 재판을 하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그 자녀들을 의롭게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의 재판과 의로우신 하나님의 재판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이 재림과 부활에 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계속 간직하는 길은 끊임없는 기도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을 통해서 주님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1절은 오늘 비유의 목적을 분명히 말해준다. 1절의 핵심은 두 개의 부정사에 있다. 하나는 항상 기도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떠난 뒤 제자들만 핍박 받는 세상에 남겨질 것을 염려하시며 낙심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틀림없이 다시 올 테니 포기하지 말고 항상 소망가운데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유의 목적이다.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비유는 “어느 마을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은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완전 개무시 한다는 말이다. 이 사람은 제멋대로 재판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두번째 등장인물은 과부이다. 과부는 사회적으로 보호막이 사라진 가장 불쌍한 존재였다. 돈이 없어 뇌물을 줄 수도 없고 그저 날마다 가서 하소연하는 것밖에는 없던 사람이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들도 완전 무시하는 신분이 높은 재판관인데 아무 힘도 없는 과부쯤이야 두려울게 있겠는가? 그러나 이 재판관은 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안그러면 날마다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예수께서 반포하심으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유포시켜야 하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포하는 과정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데 예수님의 재림은 속히 이루어지지 않기에 낙심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하신 말씀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복음을 말로 전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낙심이 될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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