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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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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17:33-37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그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6. 1.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7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7:33-37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세상 것으로 보호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버림을 당할 것이고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들은 데려감을 당한다며 제자들은 인자의재림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인자의 날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이나 소돔이 멸망하던 날과 같을 것이라며 인자의 날에는 뒤를 돌아보아 멸망한 롯의 아내를 기억하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 구원받는 자와 멸망할 자가 엇갈릴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33절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보존한다는 말은 본래 둘레를 만든다는 뜻이다. 안전하게 보존하고 지키려고 둘레에 담을 쌓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31에서 그릇들을 꺼내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자기 목숨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물질이라 생각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로 자기 목숨의 둘레에 담을 쌓으면 안전할 줄 알지만 오히려 그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누구든지 그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 목숨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개역은 산다고 의역을 했지만 새번역이 원어의 의미를 잘 살린 번역이다. 보존한다는 말은 생명을 낳거나 생명을 지켜 보존한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7:19절에서 "어린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할쌔" 라는 말이 이 단어의 의미를 잘 설명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부모가 잘 먹이고 보호해줘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내어 버리면 그 생명을 지켜 보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며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켜 보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의 재물로 자기를 보호하는 보호막을 쌓는 사람은 그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목숨까지도 버리는 사람은 새로 태어난 생명을 잘 보호하며 돌보는 셈이라는 뜻인 것이다.

개역은 34절 앞부분을"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있으며" 라고 번역했다. 이는 ASV의 번역을 따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원어는 "둘"이지 두 남자가 아니다. 원어에서 둘이라는 말이 남성형이기에 ASV는 34절과 짝으로 보고 "두 남자" 라고 의역을 한 것이다. 그러나 둘이라는 남성형 명사는 남자 둘일 경우에만 쓰이는 말이 아니라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일 경우에도 쓰이는 말이기에 둘은 남편과 아내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부부가 밤에 함께 자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이다.

밤에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은 메시야가 유월절 밤에 온다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특별한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문맥에 따르면 그런 특별한 의미일 수 없다. 34절의 밤은 35절의 낮에 일하는 여자들과 대조가 되기 때문에 주께서 밤이든 낮이든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35절은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다. 34-35절은 하나로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밤에 잠을 잘 때든 낮에 일을 할 때든 언제 주님 오셔서 한 사람은 구원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37절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제자들이 응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어디입니까? 주님" 이라고 질문한다. 이는 어디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물은 것일 수도 있고 버림을 당한 사람들이 어디에 버림을 당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만약 이 질문이 어디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물은 것이라면 어디로 인자가 재림하셔서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시체들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말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뜻이다. 시체는 안보여도 독수리가 가득 모여있고 또 그 위를 날고 있는 독수리들은 분명히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어디에?"라는 질문이 사람들이 어디에 버려질 것인지를 물은 것이라면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한 것은 버려진 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이 이 구절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뜻이라며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도 하나는 버림받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고 했기에 어느 한쪽만 말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제자들의 질문도 버림 당하는 사람들이 버려지는 곳이 어디인지 질문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독수리와 시체라는 비참한 장면의 그림에 집착하여 초점을 놓친 것이다. 이는 마치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모두가 다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속담의 의미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자기 둘레에 세상 물질로 담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순종하는 자는 비록 자기 목숨을 잃는다 해도 인자의 재림시에 반드시 데려가신다는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순종하는 자들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 단 한사람도 몰라서 버림을 당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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