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2 비유들로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고 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오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의 비유에서 부자는 자기 형제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 돌아가면 회개할 것이라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돌아간다 해도 믿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하기에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여러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은 끝이났다는 것이다. 앞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바탕으로 이제 제자들에게만 따로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17:1-19절은 믿음이라는 내용으로 묶을 수 있다. 1-10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말하고 11-19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말한다. 1-10절에서 예수께서는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애타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이다. 16장의 비유들을 통해서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내용이었기에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하면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지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절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열 두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배우던 모든 제자들을 가리킨다. 열 두 제자만을 뜻할 때는 열 두 제자들을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고 하기 때문이다. 먼저 하신 말씀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원어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들의 죄된 속성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사탄의 악한 영향 때문이다. 인간으로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걸려 넘어진다는 말은 본래 적을 잡기 위해 덫이나 함정을 설치한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걸려 넘어져서 함정에 빠지면 적에게 죽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은 사탄이 설치한 덫이나 함정에 빠져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죄된 속성으로 인해 우리가 사탄이 설치한 함정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고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일은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시고서는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라고 했다. 성경에서 화란 복의 반대이다. 따라서 다시 말하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라는 무서운 말이다. 2절에서 예수께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덫이나 함정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받을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목에 커다란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전서 3:16-17절에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멸하실 것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 때문에 믿음이 약한 사람이 사탄의 함정에 빠져 영원히 멸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할 것이라는 것이다. 멸한다는 말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처럼 된다는 말이다. 작은 자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사로처럼 불쌍한 처지에 있어 무시당할만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시고는 또 이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무서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모순적인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으로서는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사탄의 덫이나 함정으로 이용되는 일은 절대로 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