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25-26 부자의 부탁에 아브라함은 부자를 다정하게 자녀로 부르시며 너의 좋은 것으로 너만 즐겼고 나사로는 네가 던져주는 나쁜 것만 받았기에 위로를 받는 것이고 나사로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한번 갈곳이 결정되면 다시는 오갈 수 없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죽어서 그냥 땅에 묻혔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전혀 상황파악을 못하고 지옥에서 고통 받으며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시켜 자기의 혀끝의 갈증을 풀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브라함이 대답하길 땅에서 누린 호사와 고통이 반대로 뒤바뀐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25절에서아브라함은"아이야!" 라고다정하게대답한다.부자가아버지라고불렀기때문에"아들아!" 라는뜻으로대답한것이다. 한국어나영어에서는아버지와할아버지를구별하지만성경에서는모두아버지라고기록하고있다. 문맥상"조상"으로번역할뿐이다. 아브라함은유대인들이가장존경하는믿음의조상이다.이비유에서아브라함은하나님의대변인으로등장한다.
아브라함의 대답을 직역하면 "넌 살아있을 세상에서 너의 좋은 것을 받았지만 나사로는 마찬가지로 나쁜 것을 받았다" 가 된다. 원어에 보면 좋은 것이라는 말에는 "너의 좋은 것" 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나사로의 나쁜 것에는 "그의" 라는 말이 빠져있다. 그의 좋은 것이란 부자가 자기의 것으로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벌인 것이고 나쁜 것이란 "그의" 라는 말이 없기에 나사로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자는 살아있을 동안에 자신의 것으로 자신이 최고의 호사를 누렸기 때문이고 나사로도 마찬가지로 살아있을 동안에 악한 것을 받았는데 악한 것은 나사로의 것이 아니기에 나사로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새번역 성경에서는 "너의" 라는 말이 빠져있지만 개역에는 "네 좋은 것" 이라고 번역하여 원어 그대로 되어있다. 그러나 원어에서 "나쁜 것"을 개역은 고난으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괴로움으로 의역을 했는데 분명히 이는 잘못 번역한 것이다. 나쁜 것을 받았다는 것은 부자와 그 손님들이 빵으로 손을 닦고 내버리는 것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세상에서 잘살았기 때문에 부자는 지옥가고 나사로는 고통가운데 살았으니 천국갔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부자의 잘못은 절대로 부자였다는 것에 있지 않다. 아브라함도 당대 최고의 부자였는데도 예수께서는 천국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부자의 잘못은 "너의 좋은 것"으로 자기만 잘입고 잘먹고 잔치를 벌이며 흥청망청 자신의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만 썼다는 것에 있다. 나사로를 보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나쁜 것만 받게 한 것에 있다. 나사로가 받은 나쁜 것은 나사로의 것이 아니라 부자가 개들에게 던져준 쓰레기였다.
그는고통받는나사로를보고도불쌍히여기지않았다는것에잘못이있다.부자는신명기 15:11절의반드시가난하고궁핍한동족을도와주라는하나님의명령에불순종한것이죄이다.그는하나님을사랑하는척했지만실제로는하나님의마음을전혀갖고있지않았다.그는날마다호화스런파티를열면서도나사로에게음식을좀갖다주라고하지도않았다.예수께서는바리새파사람들이세리와죄인들을불쌍히여기지않고개돼지취급하는것을이러한비유로말씀하신것이다. 15:2절에보면예수께서세리와죄인들을불쌍히여겨함께식사하실때바리새인들은전혀불쌍히여기지않고오히려정죄하기만했다.
만약강도만난사람을치료해준사마리아인이이런모습의나사로를만났다면어떻게했을까? 온몸에뒤덥힌상처에기름이라도발라주고먹을것이도주라고누구에게돈이라도맡기고가지않았을까? 하나님께서는부자는가난한사람들에게다나누어주라는것이아니다.하나님께서는불쌍히여겨베풀라는것이었다.그런데전혀그런마음조차갖지않고자기즐거움을위해서는물쓰듯써버린것이죄라는것이다.그러면서불쌍한사람들을보고는경멸하듯쓰레기만던져준것이죄라는것이다. 그런사람들은천국에가지못한다는것이다.
반대로 나사로는 왜 위로를 받는가? 가난하게 살았다고 위로를 받는가? 그러면 일 안하고 놀면서 신호등 근처에 서서 돈달라고 손내미는 사람들은 다 천국가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본문에 나사로의 경건에 대해 직접 나와있지는 않지만 예수님 당시 청중들은 모두 다 나사로가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보가 나사로라는 가상의 인물의 이름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첫째이유는그이름의뜻이하나님께서돕는사람이란뜻이기때문이다.이는하나님을잘섬기던경건한사람이었다는것이다. 물론이이야기는예수께서진리를설명하기위해예를든비유이다. 하지만그비유의말한마디한마디속에당시사람들이쉽게이해할수있는지혜로운말씀이었다. 두번째, 아브라함의품에있다는말자체를예수님당시유대인들은경건한삶을살다가죽은순교자라는뜻으로받아들였다.
구약 외경중에 마카비서라는 곳에 증거가 있다. 마카비서는 BC167-160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었다. 4 Maccabees 13:17 에 보면 아브라함이 의로운 순교자를 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뜻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소한 위대한 랍비가 죽었을 때 쓰던 말이다. 아무리 넓게 해석한다고 해도 경건한 사람이 죽어 천국갔다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이 비유를 듣던 청중들은 나사로라는 이름과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는 말만 들었을 때 단 한사람도 예외없이 위대한 랍비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어에서 26절은 "이 모든 것 안에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은 "이 뿐 아니라" 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그 뿐만 아니라" 라고 번역해서 앞에서 말한 내용 뿐만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사본들의 증거를 보면 "안에서" 라는 전치사로 기록된 사본들과 "그 표면 위에서" 라는 뜻으로 기록된 사본들로 갈린다. 3세기 초 사본인 P75와 4세기 사본인 Codex Sinaiticus와 Codex Vaticanus는 "안에서" 라는 전치사로 기록했다. 그러나 5세기 사본인 Codex Alexandrinus와 Bazae Cantabrigiensis를 비롯해서 대다수의 대문자 사본들과 소문자 사본들은 "그 표면 위에서" 라는 전치사로 기록했다. 그렇다면 사본 필사자들은 "이 모든 것 안에서"나 "이 모든 표면 위에서" 라는 말을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이라기 보다는 모든 공간을 뜻하는 말로 볼 수 있다.
대부분 영어 성경들은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인 "in all these regions" 가 지역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 때문에"라는 의미라고 번역했다. 그리스어 전치사 중 "표면 위에서" 라는 전치사는 장소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유를 뜻하는 경우에도 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사본들에 이렇게 둘로 갈라지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 모든 지역에서"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어서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해석할 가능성을 남겨준다. 부자가 있는 지옥과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있는 천국 이 모든 지역에서 그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또 이어서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부자가 있는 곳으로 건너갈 수 없고 또 그곳에서 반대로 건너올 수도 없다고 했기에 모든 장소에서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한번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고 천국에 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해고 통보를 받은 청지기와 같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을 정리해서 다음 청지기에게 넘겨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을 우리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만 쓰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사로 같은 가난하지만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는 손을 닦고 버리는 빵조각을 던지듯 던져주면서 자신은 최고의 것을 누린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지 부자냐 가난하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 심판을 받아 갈 곳이 결정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