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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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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9-13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해설

2023. 5. 11.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6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6:9-13 예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한 것을 칭찬하시며 잠깐 있다 사라지는 이 세상의 재물로부터 사랑을 베풀면 장차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때 영접할 것이라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가 빚진 자들을 불러 빚을 감면해 주자 주인은 청지기가 자신과 주인을 모두 높이는 묘수를 둔 것에 칭찬을 했다고 하시며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 비유의 해설이다.

비유는 8절 첫번째 문장인 칭찬하였다 라는 말에서 끝이 났기에 8절 두번째 문장인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부터는 예수님의 해설이다. 예수님의 첫번째 해설은 슬기롭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드신 것은 잔머리 굴린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비유의 핵심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청지기 자리에서 해고되기 전 남아있는 짦은 시간동안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란 예수를 믿지 않는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빛의 자녀들이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사는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슬기롭게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해설하신 첫번째 요점은 제자들도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점은 세상사람들에게서 배우라는 것이다. 청지기가 해고 된 뒤를 대비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처럼 제자들도 짧은 이 세상 살동안 가진 재물을 가지고 영원한 나라를 대비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것이다. 청지기가 자기 재물이 아닌 주인이 맡긴 것 가지고 인심을 쓴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맡은 것을 가지고 인심을 쓰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소유도 우리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청지기는 자기 것이 아니고 맡은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자비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기 것이었다면 이 청지그는 그러한 자비를 베풀 수 없었다. 우리도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고 나는 청지기일 뿐이라 생각할 때 우리도 과감하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두번째 해설은 9절에 있다.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두번째 해설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본래 친구를 만들라는 말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에서 재물이란 불의한 맘몬이다. 맘몬이라는 말이 본래 아람어에서 온 것인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이라는 뜻으로 부를 가리킨다. 따라서 맘몬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이나 긍정적인 뜻으로 모두 쓰일 수 있는 중립적인 말이다.

여기에 불의한 이라는 말이 붙어있기에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보화와 반대가 되는 일시적인 세상의 부라는 뜻이다. 따라서 불의한 재물이란 천국의 보화가 아닌 세상의 모든 재물을 가리키는 관용어일 뿐이다.

이 말을 도박이나 나쁜 짓을 해서 얻은 돈은 친구를 만드는데 써야 하고 옳게 번돈은 자기를 위해 써도 좋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이 말의 의미를 모르고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맡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짧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의한 청지기처럼 과감하게 베풀어서 친구를 만드는데 사용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재물을 가지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런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마치 15장 1절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몰려든 것처럼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몰려들게 하라는 것이다.

9절 뒷부분의 “그 재물이 없어질 때” 란 돈이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맡은 돈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없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천국에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재물을 맡아 가지고 있는 동안 재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베푼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이웃이 예수 믿게 된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불의한 재물로" 라는 말 앞에는 밖으로 나온다는 뜻의 전치사가 붙어있다. 이와 짝을 이루는 "영원한 처소로" 라는 말에는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의 전치사가 붙어있다. 세상 재물로부터 나오는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면 장차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게 된다는 뜻이다. 영원한 처소란 말에서 처소란 원어에서 텐트라는 말이다. 텐트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거기에 영원한이란 말이 붙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텐트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던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으며 살 때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초막절이라는 명절을 통해서 텐트생활을 경험하며 그 시절을 기념한다. 또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도 텐트라는 단어로 불렀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원한 텐트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곳을 가리키므로 천국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가 잠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맡은 재물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오늘 말씀에 나온 청지기처럼 과감하게 사랑을 베풀면 그들이 우리를 통해서 믿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천국에 가있다가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를 반갑게 영접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두번째 해설의 뜻이다.

이제 예수님은 이 비유를 10-12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신다. 이 세구절은 모두 두가지 말을 대조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 비교는 작은 일과 큰 일이다. 두번째 비교는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이다. 작은 일이란 세상 재물 즉 앞에서 말한 불의한 재물이라는 것이다. 또 참된 것이란 큰 일인데 재물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는 뜻이다. 세번째 비교는 남의 것과 너희의 몫이다. 남의 것은 우리가 맡은 것이라는 뜻이다. 역시 작은 일이고 불의한 세상 제물이며 우리가 잠시 맡은 것이기에 남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너희의 몫은 우리가 장차 받을 큰 일이고 참된 것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6:19-20절에서도 세상에 보물을 쌓지 말고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다. 마태복음에서 세상의 보물은 세상 재물을 뜻하고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은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영적인 보물을 말한다고 했다. 즉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동안 진정한 경건의 삶을 살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짜 보물은 천국에 가서도 영원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재물은 정말 일시적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 보화는 이 세상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서도 계속 간직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잠시 맡은 재물을 잘 관리하는 사림이 참된 경건한 삶도 살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재물을 좋아하며 죄인과 세리들을 경멸하고 저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던 바리새인들 같은 사람들에게는 참된 보물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영원하고 참된 보물인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삶은 오직 일시적인 세상 재물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만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물질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잠시 맡은 자로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나라의 보물도 맡길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 재물과 영원한 재물과의 관계를 좀 더 정교하게 비교하면서 비유의 결론을 맺으신다. 결론은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투잡 쓰리잡도 가능하지만 고대 로마제국 영토에서 종인 청지기가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이것을 오늘날 상황에서 비유로 말한다면 한 아내나 남편이 두 남편이나 두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다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옛날에 어떤 여자분이 남편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싫고 살만 닿으면 소름끼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다른 사랑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전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나 남편을 죽이는 사람들도 뉴스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역시 대부분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거나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길 것이라는 것이다. 이 비유의 결론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다. 동시에 두가지를 다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덜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한쪽을 사랑하면 다른 쪽은 사랑하지 않게 마련이다. 바울도 골로새서 3:5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다. 세상의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은 결국 우상숭배와 같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14:25-35절이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아무 쓸모없어 거름에도 못쓴다는 것이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어떻게하면 잠시 있다 사라지는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않고 진짜로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비결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면 소유를 포기하라고 했다. 어떻게 포기하나? 소유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알 때 포기할 수 있다. 소유를 다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맡고 있는 하나님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이 우릴 보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베푸는 우리를 보고 그들이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보물을 발견하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천국에 가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재물은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유를 포기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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