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34-35 예수께서는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제자를 두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뒤에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제자를 맛을 잃어 분뇨만큼도 쓸모가 없어진 소금에 비유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한 임금이 이미 공격해 오고 있는 다른 임금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미리 사신을 보내 항복하지 않겠느냐며 모든 소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자기 희생이 빠진 제자도는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도 같아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비유이다.
34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며 앞에서 말씀하신 두가지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신다. 두가지 비유는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결단이 없이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에 이어지는 소금의 비유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없는 제자도를 맛을 잃은 소금에 비유한 것이다.
순수한 소금의 결정이라면 소금은 절대로 맛을 잃을 수 없는 물질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소금은 순수한 소금의 결정이 아니라 사해 근처에서 나는 암염이다. 이는 돌에 소금이 섞인 것이다. 이러한 암염을 물에 담가두면 소금 성분만 녹아 나오고 돌만 남는다. 소금 성분이 다 빠진 암염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금이 좋은 것이지만 만약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어리석게 되었다는 뜻이다. 신구약 전체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소금에 대한 비유에서만 맛을 잃었다는 뜻으로 쓰였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 말은 어리석다는 뜻이 아닌 다른 뜻으로 쓰인 문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째서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을 소금이 어리석게 된다고 하셨을까?
소금 성분이 다 빠진 암염과 소금 성분이 들어있는 암염은 눈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모양은 똑같지만 핵심 성분인 소금이 빠져있기에 소금이 아닌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도 보기에는 보통 사람과 똑같아 보이지만 말을 해 보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지적인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우리 말에서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허우대는 멀쩡한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맛을 잃은 소금도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소금이 없기에 "소금이 어리석게 되면"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35절은 그렇게 허우대만 멀쩡하고 사실은 어리석게 된 소금은 땅에도거름에도 쓸데가 없어 밖에다 던진다고 했다. 소금기가 조금 있는 질이 낮은 소금은 밭에 비료로 썼다. 거름이라는 말은 분뇨라는 뜻이다. 분뇨를 완전히 썩게해서 거름을 만드는데도 소금기가 아주 조금있는 암염을 썼다. 그러나 소금기가 전혀 없는 어리석게 된 소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길에 내 던지는 것이다. 소금기가 전혀 없는 어리석게 된 소금은 분뇨만도 못한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말씀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의 뜻을 깨닫는 사람만 듣고 나머지는 깨닫지 못하게 내버려 두신다는 뜻이다.
제자가 되려면 자기 소유를 포기하고 따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안에 주인노릇하는 탐욕스러운 나를 내려 놓으라는 뜻이다. 그 자리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고 자기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아직도 이기적인 내가 살아있어 주인노릇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역시 허우대만 멀쩡한 맛을 잃은 소금이다. 그러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 한다면 거름만도 못한 존재이고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공동체에 맛을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자의 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