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34-35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멸망을 예견하시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처럼 슬피 우시며 자신의 재림시 심판주로 오실 때까지는 다시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헤롯이 죽이려 한다며 떠나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아직 때가 안되었으니 계속 복음 전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시고 때가 되면 마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언자들을 죽인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34절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두번 부르는 소리로 시작한다. 이는 마치 사무엘하 18:33절에서 다윗이 "압살롬아! 압살롬아!"를 부르며 슬퍼하는 장면과도 같다. 이어서 그렇게 슬퍼하는 예루살렘을 "예언자들을 죽이고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라고 부른다. 만약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는 자라면 그 죽음이 당연한데도 마치 아들이라도 죽은 것처럼 슬퍼한다.
여기서 슬퍼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통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님의 지혜 세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님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본문에서 슬퍼하는 사람이 예언자들과 파송된 자들을 보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해석하는 이유는 11:49절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말하기를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내리니" 라고 했기 때문이다. 11:49절에서 사도들이라는 말은 13:34절에서 "파송된 자들"과 똑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11:4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기록된 말씀이나 유실된 유대교 문서에서 인용된 것이라면 "말씀하신다" 라는 현재형으로 말하지 않는다. 11:49절은 현재형이기에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11:49절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알게 된 것을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34절도 역시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내용으로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곡을 하며 우시는 장면이다. 34절에서 말하는 이는 분명히 예수님이다. 특별히 구약에서 자주 하나님은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새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같은 이미지를 떠맡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통곡을 하시는 분은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예언자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고 파송을 받은 자들이란 사도들이라는 말이기에 신약의 사도들을 뜻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사도들이 세워지기 이전이고 사도들이라는 말은 단지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일 뿐이다. 예언자들 곧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처럼 슬피 우시는 장면이다.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품는 것처럼 너희의 자녀를 품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는 말은 수도 없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수도 없이 보냈는데 수도 없이 예언자들을 죽이며 하나님을 대적한 예루살렘을 용서하며 계속 품으려 했다는 것은 구약성서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예루살렘이나 제 새끼나 너희의 자녀는 모두 단수로 하나를 가리킨다. 그러나 마지막은 "너희들이 원하지 않았다" 라는 말로 복수이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말로 쓴 것이기 대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복수로 "너희들" 이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35절은 큰 구경거리를 나타내는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너희의 집이란 34절 끝에서 "너희들"이라고 부르신 유대교 지도자들의 집인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너희의집인 예루살렘에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버림을 받는다는 말은 죄를 용서한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인데 죄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그곳에 도시가 있었는지 조차도 잊혀진다는 뜻이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라고 할 때까지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때를 가리킨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일 것이기에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에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예수님도 죽인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는 죄수의 몸으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형벌을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의 멸망을 마치 자식을 잃은 아버지처럼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이는 예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그 본보기를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곧 구약성서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 헤세드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기에 우리도 역시 그 사랑을 품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원수들을 위해 통곡하며 슬피 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