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41-44 베드로는 앞에서 말한 비유가 열 두 제자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아니면 모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주인을 대신해서 주인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제대로 나누어 주는 청지기가 그러한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만약 주인이 한 밤중이나 새벽에 온다고 해도 깨어 있는 것을 본다면 그 종들은 복되다고 하시며 도적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인자의 재림의 때도 알 수 없으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주인이 올 때 영광의 자리에 앉을 자가 누구인지를 베드로가 질문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다.
41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중간에 끊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은 주께서 이 비유를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인지이다. 여기서 이 비유가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문법상으로는 이 비유는 단수이기에 바로 앞에 나온 39-40절의 도둑이 들지 않게 깨어있으라는 비유이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35-38절에 나온 비유도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질문한 이 비유라는 말은 바로 앞의 39-40절을 가리키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그 이전의 비유도 함축하는 것이다. 문법상으로는 질문 바로 앞의 비유이지만 문맥상으로는 35-38절의 비유가 더 잘 맞는다.
베드로의 성정으로 볼 때 첫번째 비유일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베드로는 37절에 나타난 최고의 명예로운 잔치 자리에 앉는다는 말에 꽂혀 성급하게 질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베드로는 37절에 약속된 최고의 명예가 특별히 열두 제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인지를 질문한 것일 수 있다. 베드로는 아마도 베드로는 37절에 나타난 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에 특별히 감동을 받아 그러한 최고의 특권이 열두 사도들에게만 예약되어진 것인지를 물은 것일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42절에서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질문으로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질문은 누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다. 청지기란 주인이 없을 때 주인을 대신해서 종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종들을 관리하는 종들의 우두머리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집 주인의 종들을 맡아 양식을 제 때에 내어주는 자라고 설명을 덧붙이신 것이다.
여기서 자기 종들이라고 번역된 말은 일반적인 종이라는 말이 아니라 치료하는 자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의료적인 돌봄을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주인의 종으로 주인을 돌보고 섬긴다는 뜻이다. 주인의 곁에서 심부름을 하고 주인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는 장면을 그린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이 단어가 주인에게 속한 모든 종들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또 누가는 음식이라는 일반적인 말 대신 양식이라는 말을 썼다. 이는 특별히 각 개인에게 할당된 분량을 뜻하는 말이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록자들보다 전문적이고 정교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들로 증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수께서는 37절에서 최고로 명예로운 자리에 앉을 종은 이제 청지기로 바꾸어 말씀하신 것이다. 주인을 대신해서 주인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양식의 할당량을 제대로 잘 나누어 주는 자가 주인이신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종들인 청지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모든 제자도 아니고 열 두 제자도 아니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님께서 맡기신 양 떼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 최고의 명예로운 자리에 앉게 된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43절은 그 종에게 복이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언제 그 종에게 복이 있는가 하면 주인이 올 때 그가 그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종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37절을 시작하는 말과 똑같다. 따라서 베드로는 37절에서 주님께서 충성스러운 종들을 잔치의 상석에 앉혀놓고 주인은 종의 자리에서 섬기게 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질문한 것임에 틀림없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베드로로 대표되는 열 두 제자가 이러한 영광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우리 주님께서 없을 동안에도 주님이 하실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그러한 영광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다. 초점은 주인이 없을 때에도 주인이 보지 않을 때에도 항상 주인이 옆에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도 37절에 나온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