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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11:42-44

Dawn Word

누가복음 11:42-44

거짓된 믿음을 자랑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

2023. 3. 11.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1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42-44 예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십일조는 성경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판과 한결 같은 사랑은 행하지 않는 자들을 보이지 않는 무덤과도 같다며 저주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전통을 따라 정결례를 치르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겉만 깨끗하게 하면서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며 그 마음 속의 탐욕을 버리고 자선을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겉과 속이 다 깨끗하게 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겉만 깨끗하게 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42절은 "그러나 저주를 받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아!" 라고 말씀하시며 저주를 선포하셨다. 왜 저주가 있다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드린다는 것이다. 레위기 27:30절에 보면 밭에서 나는 곡식과 나무에서 나는 열매들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은 재배한 곡식과 무화과와 포도였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더 철저히 지키고자 십일조의 대상이 무엇인지 아주 자세하게 정의했다. 그런데 박하와 운향은 그러한 랍비들의 전통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는 운향은 저절로 나는 먹을 수 있는 풀이기에 십일조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기 위해 십일조를 아주 꼼꼼하고 철저하게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정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린다고 했다. 정의란 사회적 관계들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냉담했다고 했다고 흔히 해석한다.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의는 가난한 자들에게 냉담하지 않는 것이고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한글 개역과 새번역 모두 그와 같이 해석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대부분 정의는 이웃사랑이고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원어의 정의(justice)라고 번역한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문자적인 의미는 심판(judgement)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히 멸망시켜야 할 이스라엘을 한없이 인내하며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며 무죄방면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한 용서와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들을 심판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4:20절에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야고보서 2:17-18절에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며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주면 자신은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겠다고 했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척하지만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래서 43절에서 예수께서는 또다시 "저주를 받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아!" 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를 받는 것을 기뻐한다고 했다. 저들은 회당에서 가르칠 때 입는 옷을 입고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에 앉았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갈 때도 그러한 옷을 입고 다녔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던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하나님 때문이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마치 왕을 태운 말이 인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위대하기에 인사를 받는다고 착각했던 사람들이다.

44절도 역시 "저주를 받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아!" 라고 말씀하시며 드러나지 않은 무덤 같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겉은 흙으로 덮여 깨끗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썩어가는 시체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39절에서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말을 다른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회칠한 무덤과도 같이 겉은 아름답게 꾸미지만 그 속사람은 온갖 더러운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번이나 저주하신 것은 완전한 저주이다. 하나님의 저주를 분명히 확인해서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예배에 잘 참석하고 십일조와 각종 헌금 잘 드리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나 미국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된 것이다. 번영신학을 통해 자신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자신들은 복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기에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것이다. 둘 다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예배와 헌금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이웃 사랑만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 사랑만 행하며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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