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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11:33-36

Dawn Word

누가복음 11:33-36

마음의 눈이 진실하면 그 영혼이 밝을 것이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3. 9.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1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33-36 예수께서는 영혼의 등불인 마음의 눈이 하나의 진실한 눈이어서 생명의 빛인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온 영혼이 밝을 것이고 둘로 갈라진 악한 마음의 눈으로 골라서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그 영혼이 어두울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모여든 무리들에게 요나가 보여준 표징 말고는 보여줄 표징이 없다며 솔로몬의 말과 요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날에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으켜져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도 생명의 빛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태도를 등불에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33절은 아무도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어에서 움이란 땅을 파고 짚이나 거적등으로 그 위를 덮은 뒤 겨울에 그 안에 채소 같은 것을 저장해 두는 것을 뜻한다. 움막이라고 한다면 벽이 없고 대신 땅을 파서 벽을 만들고 지붕만 짚으로 엮어 덮은 작은 거처를 뜻한다. 움보다 더 큰 것이 움막이고 움막보다 더 크면 움집이다. 한국에서 움과 관련된 말들은 모두 집 밖에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어에서 이 말은 건물에 딸려있는 어두운 비밀 저장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Louw-Nida 그리으어 사전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장소를 뜻하는데 물건을 저장하거나 숨기기 위해 지하에 만든 구조물을 가리킬 것이라고 했다. 원문에서 이 말이 잘 지은 그리스식 집의 한 부분으로서 지하 저장고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집에 딸려있는 지하저장고나 벽을 파서 만들어 놓은 비밀금고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고 빛이 전혀 없는 공간이다. 이곳에 등불을 들고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집 전체에 빛을 비추지는 못하는 곳이기에 계속 그곳에 등불을 두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움과 짝을 이루는 말은 말이다. 원어에서 말이란 우리말에서와 같이 곡식을 되는 그릇이다. 이는 곡식의 양을 잴 때도 쓰지만 불을 끌 때 그 냄새가 집 안에 퍼지지 않도록 할 때도 쓴다. 오늘날 병에 담긴 양초를 그냥 불어서 끄면 냄새가 나지만 뚜껑을 덮어서 끄면 냄새가 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움과 말은 크기만 다를 뿐 둘 다 그 안에 등불을 두면 빛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똑같다.

빛을 밖으로 비추지 못하는 움과 말과 대조를 이루는 말은 등경이다. 당시 그리스식 집들은 램프를 현관에 두고 당시 많은 팔레스타인 집들은 방이 하나뿐이었다. 마태복음 5:15절에서는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도 등불을 등경 위에 둔 결과 그 집에 들어가는 자가 그 빛을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마태의 기록과 누가의 기록을 합쳐본다면 등경은 집에 들어가는 현관 근처에 있고 집은 한칸으로 되어 있기에 집안 전체를 비춘다고 볼 수 있다.

34절에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했다. 등불이 집안 전체를 비추고 그 집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는 것처럼 눈도 몸 전체를 비추고 몸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그 눈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 했다. 눈이 성하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눈이 하나라는 뜻이다. 눈이 외눈이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이 하나라는 말은 신실하고 진실하다는 뜻인것처럼 눈이 하나라는 말도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 반대로 눈이 성하지 못하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눈이 악하다는 뜻이다. 눈이 성하다는 말을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인 하나라는 뜻으로 직역해야 악한 눈 즉 두개인 눈과 대조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진실한 한 마음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눈이란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는 뜻이고 그 반대는 악한 눈 즉 두개의 눈 두 마음을 품은 자인 것이다.

이 눈은 실제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그렇기에 35절에서는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35절에서 하나의 눈과 악한 눈으로 비유한 것을 실제 적용하도록 하시는 말씀이다. 네 안에 있는 영혼이 악하지 않은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마음의 눈이 악하면 그 속에 잇는 영혼에 빛을 비추지 못하기에 그 영혼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고 악한 것이다.

36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한다. 만약 네 온 몸이 밝다면 그래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이라는 말이 조건이다. 진실한 마음의 눈을 가져서 그 전체 영혼이 밝고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등불이 그 빛과 함께 너를 비출 때와 똑같이 네 전체가 밝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등불 하나가 온 집안을 다 밝히는 팔레스타인의 가옥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마음의 눈이 나뉘어있지 않고 하나여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영혼 전체가 다 밝을 것이고 어두운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이는 11:16절과 29절에 나오는 표징을 구하는 세대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들의 마음의 눈은 악하여 예수께서 전하시는 생명의 빛인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생명의 빛인 하나님 말씀을 하나의 마음의 눈으로 진실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영혼 전체가 밝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하나의 눈인 진실한 마음의 눈으로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아니면 둘로 갈라진 악한 마음의 눈으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골라서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야고보서 1:6-8절에서도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했다.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며 그 말씀을 의심하는 자들이 바로 악한 눈을 가진 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등불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생명의 빛인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의 진실한 눈으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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