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9-13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들기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좋은 것으로 주시며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덤으로 주신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주신 뒤에 한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이웃에 가서 빵을 꾸어달라 하면 아무도 거절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며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기도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의 결론이다.
9절을 근거로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비유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 관한 비유에 관한 설명이고 결론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는 밤중에 찾아온 순례자의 비유를 바탕으로 그림 같은 언어로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첫째 명령은 구하라이다. 구하기면 하면 주신다는 것이다. 뭘 구하라는 것일까? 이는 이웃집에 가서 밤중에 찾아 온 여행자를 대접할 빵 세개만 달라고 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명령은 찾으라 이다. 찾는자가 발견할 것이라는 것이다. 뭘 찾으라는 것인가? 어떤 친구가 도울 수 있는지 찾으라는 것이다. 찾으라는 말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로 흔히 쓰이다. 형제자매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 어디서 올지 찾기만 하면 도움을 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이다.
세번째 명령은 문을 두드리라는 것이다. 잠자고 있는 친구 집 문을 두들기듯 하나님의 문을 두들기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도 안하시기 때문에 주무시나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문을 두들기면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믿음의 형제 자매를 위해 기도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높여지길 위해 하나님의 집의 문을 두들기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문을 열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실 것이고 즉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10절은 9절의 명령을 해설한 것이다. 이 세가지 행동 앞에 “모두” 라는 말이 붙어 있다. 이런 것을 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구하기 위해 기도의 문을 두들기는 사람 한사람도 예외없이 하나님께서 기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얼굴을 내미시며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도 똑 같은 구절이 나온다. Richard Glover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어머니가 아이의 곁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달라고 하고, 만일 옆에 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면 찾고, 만일 어머니가 방안에 있고 문이 닫혀 있으면 문을 두드리면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서 그들을 돕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나오셔서 여러분의 부탁을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11-12절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짧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인간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한 비유이다. 역시 “너희가운데 누가”라는 공식을 다시 사용하신다. 이는 11:7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그럴 사람 없다 라고 합창할 것을 기대하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예수님의 청중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그런 아버지는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너희 아들이 생선이나 달걀을 달라고 한다면 뱀이나 전갈을 줄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에는 달걀 대신 빵이 나온다. 빵과 돌이 짝으로 나온다. 생선이나 달걀이나 빵은 유대인들이 즐겨먹던 기본적인 식사이다. 이는 모두 정결한 것이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의 대표이다. 뱀이나 전갈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것이고 아이에게 해로운 악한 것을 상징한다. 자녀가 좋은 것을 달라고 하는데 해로운 것을 줄 부모가 어디있느냐는 것이다. 악한 인간 부모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할 나위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심으로 악한 것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형제 자매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고 그들을 섬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3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되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받은 상태가 아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똑 같은 구절에 성령대신 좋은 것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성령이라는 말은 형제 자매를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해달라고 할 때 성령님의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을 반드시 주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밤중에 자는데 찾아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구하는 자도 기쁨으로 한다기 보다는 공동체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관습을 따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을 주셔서 기쁨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교회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