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29-37 율법사는 누가 이웃인지 질문을 하자 예수께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가고 사마리아 사람만이 도운 이야기를 통해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시며 너도 가서 이같이 하라고 하셨다.
한 율법사가 예수께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대답 대신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너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되물으시고 이에 대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 대답하자 그대로 하면 산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율법사가 자신이 다시 주도권을 잡으려고 누가 이웃인지 질문하자 예수께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대답하시는 내용이다.
예수께 질문을 했던 율법사는 자신이 스승이 되어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질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거꾸로 예수께서는 이 율법사에게 질문을 하고 네가 알고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그대로 너도 행하라고 가르치셨다. 이에 자신이 다시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찾으려고 다시 질문한 것이 29절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마치 코스를 마친 박사과정 학생에게 질문하는 교수와 같은 태도로 질문한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신 것에 대해 한단계 더 깊은 질문을 한 것이다.
29절에서 이 사람은 자신이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말했다고 했다. 이 율법사는 율법에 관해서는 자신이 전문가이기에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예수께 질문을 한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머리로만 알지 말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라고 하시자 그 이웃 사랑을 행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질문한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직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만 사랑을 해야할 이웃이고 그 밖의 이방인들은 미워하고 멸망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수께 그러한 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30절에서이에 대해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과 마주쳤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은 분명히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유대인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약 17마일 거리인데 3000 피트 이상 고도차이가 난다. 여리고는 해수면보다 800피트나 낮은 곳이다. 내려간다는 말도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난 것이다.
이 사람은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이었기에 돈도 제법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옷을 벗겼다는 것은 가진 것을 다 빼앗고 마지막으로 옷도 빼앗았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때려 반쯤 죽게 만들어 놓고는 버리고 떠났다. 계속해서 내려가던 이 사람은 더 깊은 사망의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31절에서 한 제사장도 우연히 그길로 계속해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다른 길로 지나가버렸다. 이 사람은 자신의 차례가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다른 길로 지나가버렸다는 것은 마땅히 도와야 하는데 돕지 않는 길을 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32절에서는 한 레위인도 똑같이 그곳에 이르러서 그를 보고는 역시 피하여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 레위인도 역서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웃인 유대인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데도 그냥 보고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33절에서 등장한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에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한 뒤 이민족들과 뒤섞인 반쪽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앗시리아는 이주정책으로 민족들을 서로 섞어놓아 힘을 못쓰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유대인들 상류층들은 순수한 혈통을 유지했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들보다 못하게 여긴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도 경멸하는 한 사마리아인은 이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다.
34절을 보면 이 사람은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주고 기름과 포도주를 그 사람에게 붓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그를 돌보아주었다고 했다. 기름과 포도주는 응급치료약으로 쓰이던 것이기에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하고 데려갔다는 뜻이다.35절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그 다음날에 데나리온 둘을 여관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부탁을 했다. 만약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에 갚아주겠다고 했다.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기에 이틀 품삯을 준 것이고 이 사람을 돌보아 주는데 충분한 돈을 준 것이라는 뜻이다.
36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이 율법사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정결을 지키는 사람들이기에 자신들의 이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정 반대로 뒤집혀있다.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는 말은 누가 진정한 이웃으로 증명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 놓이자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도망가고 원수로 생각했던 사람이 진정한 이웃으로 증명이 된 것이다.
37절에서 이 율법사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피하려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에수께서 그에게 또 다시 말씀하시길 너도 가서 이같이 하라고 하셨다. 율법을 철저히 연구하고 율법을 지키는 척하지 말고 그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웃들에게 진정한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웃은 거룩한 척 하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했을 때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이웃이다. 만약 거룩한 척하고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척 하면서도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도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도망간다면 이웃이 아닌 것이다. 우리도 말로만 거룩하고 예배로만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처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