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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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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9:23-27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라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2. 4.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9:23-27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따라 오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시며 그 이유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 때문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책망하시고 명령하신 뒤 자신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거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신 뒤 사흘만에 일으켜질 것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내용이다.

23절은 새번역과 개역이 다르게 번역되어있다. 개역은 "무리에게 이르시되"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라고 번역했다. 원어는 개역처럼 "무리에게"가 아니고 새번역처럼 "모두에게" 이다. NLT는 개역처럼 "무리에게" 로 번역했지만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모두에게"로 번역했다. 새번역이나 NLT는 마가복음과 비교해 보고 마가복음이 원형일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에게"를 "무리에게"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누가는 "모두에게"와 "무리에게" 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했다. 누가는 무리들이라는 말을 기적을 체험하거나 구경하려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그러나 누가는 "모두에게" 라는 말은 누가복음에서 딱 두 번만 썼다. 12:41절에서도 같은 말이 한번 더 나오는데 베드로가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12:1절은 분명히 무리들과 함께 있을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라 했기에 12:1-21절은 무리들과 함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12:22절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기에 12:22-40절은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2:41절에서 베드로의 질문은 바로 앞의 비유에서 나온 마지막 때 주님을 맞이해서 주인 곁에서 섬기는 특권이 베드로 자신을 포함한 열 두 사도에게 있는 것이냐 아니면 모든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9:23절의 "모두에게 말씀하셨다"는 말도 모든 무리가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말씀하셨다는 말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한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강조해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는 뜻일 수 있다. 그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 자신을 따라오려면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그리스도는 세상을 정복하여 자신들을 구원할 왕이라는 이기적인 욕심일 것이다. 그것을 내려놓고 대신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각자 자기 십자가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이 받아야 할 고난을 감당하고 따라와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제자들이나 유대인들과 같은 욕심은 날마다 계속 새롭게 올라올 것이기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2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반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해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목숨이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뜻한다. 잃는다는 멸망한다는 뜻이다. 멸망한다는 말의 반대말은 그 목숨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생명을 지키려고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이고 반대로 예수님을 위하여 그 생명이 이 세상에서 멸망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날마다 올라오는 이기심을 따라 산다면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이고 그러한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 고난의 길을 가다가 죽는다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25절도 역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이다. 온 세상을 다 얻는다는 것은 마귀가 예수님께 유혹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뜻한다.

잃는다는 말은 자신이 스스로 망가뜨린다는 뜻이고 빼앗긴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 의해 몰수를 당한다는 뜻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죽게 하거나 남에게 자기 목숨을 빼앗기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잃는다는 말과 빼앗긴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구별해서 설명할 수 있다. 잃는다는 말은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뜻으로 자신을 죽게 한다는 뜻인 반면에 빼앗긴다는 말은 자신의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지은 죄로 자기 스스로를 죽이든지 아니면 죄 때문에 남에게 그 생명을 몰수당한다면 온 세상을 다 갖는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뜻이다.

26절도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그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안에서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한다고 했다.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말씀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에 바올도 로마서 1:16절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그 복음을 하나로 묶었다. 예수님의 말이란 예수님의 선포와 가르침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예수님과 그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신다는 뜻이다.

27절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다. 그 내용은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도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일곱가지 주요한 해석을 변화되신 예수님,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기독교의 확산, 복음의 내적 발달, 예루살렘의 멸망, 재림으로 제시한다. 문맥을 통해서 본다면 바로 이어지는 세 사람의 제자들 앞에서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난해한 본문이 있을 때는 항상 가장 먼저 전 후 문맥에서 찾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도 역시 예수께서 선포하고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도 날마다 우리가 원하는 생각들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기 위해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잘못해서 고난을 겪는다면 아무 상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을 겪는다면 이는 장차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실 때에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며 칭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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