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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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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7-9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심히 당황한 헤롯

2023. 1. 30.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9:7-9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심히 당황했는데 어떤이들은 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다른 구약의 예언자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했기 때문이다. 헤롯은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믿고 예수를 보고싶어 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질문에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며 불치의 병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시며 대답하신 내용이었다. 그렇게 보여주신 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셔서 파송하시면서 영접하는 자들과 함께 머물고 만약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면 발의 먼지를 떨어 증거로 삼으라 하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소문을 듣고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싶어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답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설명이 된다.

원어에서 7절은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들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마가는 왕을 뜻하는 바실레우스라는 호칭을 썼는데 누가는 분봉왕으로 번역된 테트라-아르케스 라는 호칭을 썼다. 테트라는 넷이라는 뜻이고 아르케스는 통치자 라는 뜻으로 네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 라는 뜻이다. 이는 왕이 아닌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에 해당하는 지위이다. 헤롯 안티파스는 왕이 되고 싶어 했지만 한번도 왕이된 적이 없기에 누가가 정확한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란 원어에서는 되어진 모든 일이란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바로 앞 6절에 나온 열 두 제자들이 갈릴리 지방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기적으로 병을 고친 것과 직접 연결되는 말이다. 누가는 되어진 모든 일이라는 표현으로 9:6절과 매끄럽게 연결하여 전한 것이다. 원어에서 마가의 표현과 비교해 보면 누가는 항상 정확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여 매끄럽게 연결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황했다는 말을 쪼개보면 철저히(dia) 라는 말과 당황했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당황했다는 말을 다시 쪼개면 멀리(apo)라는 말과 본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이는 마치 갖고있는 귀한 물건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려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장면을 묘사한 말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되찾지 못하는 것만 해도 당황스러운 일인데 거기에 철저히 라는 말이 붙어있기에 대단히 당황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단히 당황한 이유가 바로 이어서 설명되는데 어떤 이들은 요한이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라 했다. 헤롯은 자신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한 일에 대해 요한이 죄라고 지적한 것 때문에 옥에 가두었고 죽이기까지 했다. 죽은 요한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났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와 예수께서 선포한 메시지가 비슷하고 서로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헤롯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그런 헛소문에 마음이 흔들려 대단히 당황하게 된 것이다. 만약 요한이 다시 일으켜졌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자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한 것이 증명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당황한 것이다.

8절에서 또 어떤 이들로부터 들은 소문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요한은 죽었기에 일으켜졌다고 했지만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리워졌기에 나타났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과 기적들이 엘리야가 종말론적 예언자로 나타난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 중 하나가 다시 일으켜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옛 예언자 중 하나란 유대교 전통에 의하면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다시 나타나 세상을 도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그러한 기대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소문을 들은 헤롯은 9절에서 말하길 자신이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자신이 이런 소문을 듣고 있으니 이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하며 예수를 보고싶어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헤롯은 세가지 소문 중에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는 소문을 믿은 것이다. 예수를 보고싶어 했다는 것은 믿음에서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소문을 들은 헤롯이 심히 당황했다는 이야기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장면과 제자들이 돌아와 그 결과를 보고하는 장면 사이에 있다. 그렇기에 헤롯은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병이 치료됨으로 그 증거를 보였다는 것을 소문으로 듣고 당황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능력들이 나타날 때에 그 소문을 듣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세상 사람들은 믿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거나 당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많은 기적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기적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한 것이다. 고대의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든는 것이기에 오늘날 말로 바꾼다면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읽음에서 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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