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1-6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권세와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셔서 파송하시면서 영접하는 자들과 함께 머물고 만약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면 발의 먼지를 떨어 증거로 삼으라 하셨다.
지금까지 나눈 8:22-56절은 예수께서 자신이 자연 만물과 영적인 존재들을 다스리시며 사람의 병과 마음 속의 고통까지 다 아시고 고쳐주시며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자신이 가지신 하나님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하시는 장면이다.
9:1절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불러 모은다는 말은 "함께" 라는 말과 "부른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신약성서에서 누가는 일곱 번이나 사용했고 마가는 15:16절에서 온 군대를 불러 모은다고 할 때 딱 한번 쓴 말이다.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 말이다. 이는 흩어져 있는 군대나 각각 흩어져 사는 친척들을 한 곳에 불러 모은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을 때 "앞으로" 라는 말과 "부른다"는 말이 합쳐진 말을 썼다. 이는 주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개똥아! 이리와봐!" 라는 식으로 불러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할 때 쓰는 말이다. 누가도 이 말을 열 세번이나 사용했지만 대부분 한 두명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할 때만 썼다.
누가는 "함께 부른다" 는 말과 "앞으로 부른다"는 말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분명히 구분해서 썼다. 따라서 누가가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다"고 기록한 것은 많은 제자들 사이에 섞여있던 열 두 제자를 함께 불러서 한 곳에 모으시는 그림이다. 원어에서 누가가 사용한 문장들을 보면 의미를 정확하고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원어에서는 열 두 제자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었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모든 귀신들과 모든 병들 위에 있는" 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태와 마가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것에 관해 "권세" 라는 단어만 사용했다. 그러나 누가는 여기서 "권세" 라는 말과 함께 "능력"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했다. 누가는 능력이라는 말을 덧붙여 사용했했는데 예수께서 병을 치료하는 영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권세라는 말은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들에게 오라 가라 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귀신들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권세라는 단어로 말한 것이고 병을 치료하는 영적인 능력은 능력이라는 말로 구분해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사람에게 귀신을 명령해서 나가라 하는 권세를 주신 것이고 귀신들린 것이 아닌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영적인 능력도 주셨다고 구분해서 말한 것이다. 누가는 오라 가라 명령하는 권세와 치료하는 능력을 구분해서 사용했지만 마태와 마가는 모두 뭉뚱그려 권세라고 한 것이다.
2절을 보면 제자들을 파송한 목적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료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게 한다는 말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멀리 보내신 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병을 고치게 하는 것은 말로 전파한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보게한 것이다.
3절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여행을 위해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지팡이나 자루나 빵이나 돈이나 두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자루는 여행 가방과도 같은 것이다.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 멀리 여행갈 때 메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 나온 것만 가지고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여행갈 때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두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은 여벌 옷도 갖고 가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멀리 가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4절은 그래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떠나라고 하셨다. 한 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집이 누추하든 좋든 상관없이 영접하는 사람의 집에서 모든 것을 공급 받고 그곳 복음을 전하다가 떠날 것이며 더 좋은 곳을 찾아 옮겨 다니지 말라는 의미이다.
5절은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도시에서 떠날 때 먼지를 너희 발에서 떨어버려서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했다. 도시라는 말이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영접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럴 때는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가 하나님 말씀을 거부했다는 증거를 삼으라는 것이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린다는 것은 당시 랍비들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방인들의 땅에 갔다가 거룩한 땅으로 돌아올 때는 발의 먼지를 조심스럽게 다 떨어버리고 돌아와야 한다고 가르쳤다. 거룩한 땅을 더럽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방인처럼 여기라는 것이다. 너희는 이방인들이라는 증거로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그들을 완전히 떠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포기하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다른 곳에 가서 전하라는 뜻이다.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매달리며 그들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우선 듣고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마가는 영접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거든이라고 해서 그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명확히 표현했다. 그러나 누가는 영접한다는 한 단어로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마가는 발바닥의 흙먼지를 떼어내라는 표현을 썼다. 누가는 발바닥이 아니라 발 전체로부터 멀리 떼어내라는 표현을 썼다. 이처럼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쓴 것은 실제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은 증인들이 전하면서 각자가 서로 다르게 전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누가는 마가와 Q문서를 참고 해서 편집한 것이 아니다. 실제 증인들이 전한 말을 기록한 것이다.
6절은 제자들이 나가서 각각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며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는 것이다. 6절에서도 역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먼저 나오고 병을 고치는 것이 뒤에 나온다. 따라서 제자들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복음을 전할 때 영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이 공급해 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 부유한 집에서 영접한다면 그들이 공급해 주는 좋은 것을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지낼 수 있지만 가난한 집에서 영접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을 함께 먹고 누추한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대우를 받으려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태도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의 초점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