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43-48 열 두 해 전부터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생명과도 같은 전 재산을 자신의 치료를 위해 다 써버린 뒤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서 옷자락을 만졌을 때 예수께서 아시고 치료해 주셨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게 하셔서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의 관계로 들어가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호수 건너편 유대인 지역으로 오실 때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영했고 그 중 회당장은 예수님 발 옆에 엎드려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을 했는데 무리들이 많아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술을 만져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43절은 "그리고 열 두 해 전부터 혈루증 안에 있던 한 여인이 있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마가는 열 두 해 동안이라는 말을 썼지만 누가는 의사답게 "열 두 해 전부터" 라는 말을 써서 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술한 것이다. 개역은 "열 두 해를" 이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열 두 해 동안"이라고 번역했다.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도 "for" 로 번역했지만 원어의 전치사는 분명히 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밝힌 것이다. 마가복음 5:25절은 단순히 12년이라고만 해서 12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뜻으로 기록한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표현이다.
새번역에는 "의사에게 재산을 모두 다 탕진했지만" 이라는 표현이 괄호로 표시되어있고 개역개정에는 이 부분이 난하주에 표시되어있다. 가장 권위있는 대문자 사본들과 그 밖의 거의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 어째서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은 이 부분이 원본이 아니라고 표시해 놓았을까? 이는 3세기 파피루스 사본 하나와 4세기 대문자 사본 하나가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개의 오래된 사본이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해도 이 부분의 표현을 살펴보면 누가가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가복음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가는 "그녀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다" 라는 표현을 썼다. 마가가 사용한 다 써버렸다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5번이 나오고 구약 외경에서는 13번이나 나오는 말이다. 이는 코이네 헬라어에서 흔히 쓰던 표현이다. 그러나 누가가 사용한 다 써버렸다는 단어는 신약은 물론이고 구약 외경에서 조차도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에서 사용하던 고급스러운 표현이다. 이 단어는 "향하여" 라는 말과 누가복음 9:54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다 삼켜버리라 할까요?" 라는 표현헤서 삼킨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이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다 써버렸다는 아주 섬세한 표현이다.
게다가 마가가 모든 재산으로 표현한 말을 누가는 "생명(bios)"이라는 단어로 썼다. 자신의 모든 생명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다 소진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누가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전 재산을 뜻하는 말로 여러 번 썼다(8:14; 15:12, 30; 21:4). 이 말은 전재산을 생명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절대로 생활비 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표현은 누가가 직접 썼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세상에 어느 필사자가 이렇게 독특한 표현으로 원문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누가가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도 마가복음을 보고 이렇게 고쳐 쓸 수 없다. 이는 누가와 마가가 Q라는 문서를 보고 고쳐 베낀 것이 아니라 실제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다시 말하지만 Q라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기적이 있었고 그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여자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전재산을 다 써버렸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치료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 이 여자는 완전히 알거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혈루증을 앓는다는 것은 부정하여 사람들과 접촉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가족들과 공동체에서도 완전히 분리된 불쌍한 여인이다. 이제 이 여인에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이 여인은 몰래 예수님의 앞으로도 다가오지 못하고 몰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댄 것이다. 옷 가라는 말은 유대인 남자들의 겉옷 네 귀퉁이에 달린 옷술을 뜻하는 말이다. 옷자락도 아닌 옷자락 끝에 달린 옷술에 손을 댄 것이다. 그러자 출혈이 즉시 그쳤다고 했다. 이 여인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신에게 왔고 자신이 치료되었다는 것을 즉시 느낀 것이다.
45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셨다. 모두가 아니라고 부인할 때에 베드로가 "대장님!" 이라고 부르면서 무리들이 당신을 에워싸서 밀고 있다고 했다. 에워싼다는 말은 "함께" 라는 말과 "갖고 있다" 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모두가 예수께 치료를 받으려고 서로 손을 내밀며 밀치고 있는 장면이다.
46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누군가 내게 손을 댔다" 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내게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내가 안다고 하셨다. 빠져 나갔다는 말은 완전히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완전히 전달된 것이다. 옷도 아니고 옷자락 끝에 달린 옷술을 그것도 뒤에서 손을 댄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밀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치료해 주신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직접 지목하지 않고 누가 내게 손을 댔다고 하심으로 그녀가 스스로 군중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신 것이다. 이 여인의 병이 치료된 것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7절에서 이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떨며 와서 예수께 엎드려서 손을 댄 이유와 병이 나은 것을 모든 백성들 앞에서 선포했다. 이 여인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간증을 한 것이다. 이 여인의 병이 나은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증인이다.
그러자 48절에서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되 "딸아!" 라고 부르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이 여인이 손으로 만지면 나을 것이라는 미신적인 믿음을 가졋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여인이 예수님이라면 자신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을 보시고 네가 손을 만졌기에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 네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셨다고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평안히 가라는 말은 평화를 향해 가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치료하심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었으니 이제 그동안 분리되었던 사람들과의 평화의 관계를 향해 들어라는 뜻이다. 이제 다시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며 살라는 뜻이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힌 것이다. 따라서 여인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여인의 모든 형편도 다 아시고 여인이 옷자락을 만진 이유도 다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우리도 역시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과 평화의 관계를 향해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