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34-39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모두 몰려와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믿기 보다는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청을 했다. 예수께서는 떠나시면서 귀신 나간 사람에게 명하여 가족들에게 전하라 하셨지만 귀신 나간 사람은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갈릴리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게 있던 군대 귀신들을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서 모두 호수에 빠져 죽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에 대한 그 지역 사람들의 반응과 예수께서 치료 받은 사람에 대해 명령하신 내용이다.
34절에서 돼지를 치던 자들은 그 이루어진 일을 본 뒤 도망가서 도시와 촌에 알렸다고 했다. 도시란 성으로 둘러싸인 지역이고 촌이란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농촌지역이다. 사방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35절에서 사람들은 그 이루어진 일을 보려고 예수께 나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사람이 옷을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예수의 발 옆에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고 했다.
옷을 입은 것과 앉아 있는 모습은 앞에서 벌거벗고 고함지르며 뛰어다닌 것과 대조된다. 이제 온전히 제정신이 들었다는 뜻이다. 개역은 발 아래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발 앞에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발 옆에" 이다. 이는 제자들 무리에 섞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장면이다. 이처럼 놀랍게 변화된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두려워했던 것이다.
36절에서 지켜본 목격자들은 귀신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구경 온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이들 목격자들은 돼지를 치던 자들이고 정신없이 도망가서 사람들에게 알렸던 사람들이다. 누가가 구원을 받았다는 단어를 쓴 것은 이 사람이 영적인 구원을 받은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누가는 돼지 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37절에서 거라사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께 떠나달라고 간청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큰 두려움에 단단히 사로잡혔기 때문이라 했다. 그들이 떠나달라 간청한 것이 앞으로 또 경제적 손실을 입을까봐 두려워했는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다면 그들은 예수가 물질적 번영보다 사람들을 구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 없이도 지금까지 물질적 번영을 누리며 잘 살아왔기에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예수가 부담스러워 떠나달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돼지떼를 치던 사람들이 전한 말을 들었다. 또 모두 함께 나와서 귀신들린 사람이 변화된 기적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고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적으로 목격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특별히 거라사 지역 사람들처럼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누리며 사는 삶의 방향이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방향으로 바뀔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시는데 38절에서 귀신 나간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청했다.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보내신다는 말은 매여있던 것을 풀어주고 석방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은 예수께 매여있어 예수님을 섬기는 종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풀어주며 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께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9절에서 예수께서는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먼저 가족에게 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네게 행하셨는지 다 알리라는 것이다. 개역에서 "고하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이야기 하라"로 변역한 말은 철저히 라는 말과 되게하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정확히 다 전해서 자세히 다 전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 집으로 가서 전하지 않았다. 그는 떠나가서 그 도시 전체에 전파했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을 전한 것이다. 개역에서 전파했다고 번역하고 새번역은 알렸다고 번역한 말은 주로 하나님 나라에 관해 선포할 때나 설교할 때 쓰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집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철저히 전하라고만 하셨다. 그러면 가족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게 하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가족들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철저히 누비고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전도자가 된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을 본다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라는 것도 알고 그 능력도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1:25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라고 했다. 그러나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그 반대로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엄청난 물질보다 한 사람을 더 중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라사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기적을 보여주셨어도 두려워하기는 하면서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은 우리가 귀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변화된 삶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와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에게 계속해서 보여주고 증거하면서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