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26-33 예수께서 갈릴리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게 있던 군대 귀신들을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서 모두 호수에 빠져 죽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실 때에 광풍이 불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순종하여 잔잔해졌고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놀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갈릴리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가셔서 군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내용이다.
26절은 그들은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고 했다. 개역에서는 이르렀다고 번역하고 새번역에서 닿았다고 번역한 말은 깊은 바다에서 얕은 해변으로 돛을 달고 항해하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예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셔서 잔잔해진 갈릴리 호수를 조용히 항해하는데 이제 깊은 곳을 벗어나 얕은 갈릴리 호숫가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장면이다. 배는 거라사 지방에 닿앗는데 그곳은 갈릴리의 건너편이라고 했다.
거라사라는 지명에 대해 4-5세기 사본들에서부터 서로 다른 이문들이 존재한다.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와 사해의 중간 쯤의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데카폴리스 지역의 번창했던 도시로 갈릴리 호수에서 30마일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3세기 초반 파피루스 사본과 4-5세기 대문자 사본 사본 두개는 거라사로 기록을 했고 다른 4세기 대문자 사본 하나는 겔게사로 기록을 했고 5세기 대문자 사본 하나는 가다라로 기록을 했다. 사본의 외적 증거로는 거라사가 원본이다. 가다라는 후대의 필사자들이 마태복음 8:28절과 같게 고쳐 기록한 것이다.
사본의 증거로 볼 때 마태복음은 가다라가 원본이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거라사가 원본이다. 오리겐은 겔게사에 절벽이 있기에 겔게사일 것이라고 했지만 복음서 기록자들은 절벽이 있는 정확한 지명을 몰라서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복음서를 듣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지명을 가지고 그 인근 지역에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전한 것이기에 갈릴리 호수에서 5마일 떨어진 가다라로 기록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가까이에 있는 가다라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경우에는 사람들은 가다라를 모르기 때문에 당시 로마제국 전체에 널리 알려진 갈릴리 인근의 큰 도시인 거라사 인근 지역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1절 뒷부분에 갈릴리 건너편이라고 덧붙여 그곳이 어디인지 알린 것이다.
27절은 원어에서 "그 땅으로 나갔을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배가 도착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그 때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그 도시 사람인데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았고 집에서 살지도 않았고 무덤 안에서 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무덤 안에서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옷이 다 헤어져 못쓰게 되어 버렸을 것이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은 "무덤 사이에 거하는지라" 라고 번역했는데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원어는 분명히 "무덤 안에서 있었다" 라고 되어 있다. 그곳 사람들의 무덤은 대부분 바위를 뚫고 그 안에 시체를 둔 뒤 돌로 입구를 막았다. 그 무덤 속을 집으로 삼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28절에서 이 사람은 예수를 보자마자 크게 고함을 지르며 예수 앞에 엎드렸다고 했다. 엎드렸다는 말은 신적 존재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예수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신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는 뜻이다. 이어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그는 "예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불렀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주로 이방 나라들 사이에서 여호와를 부르던 이름이다. 구약에서 가나안의 제사장 멜기세댁과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이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 귀신들린 이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존재로 본 것이고 예수는 바로 그분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
이어서 이 사람은 당신께 간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말아달라고 했다. 괴롭게한다는 말은 죄인을 심문할 때 고문을 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때가 이르기 전에" 라는 말을 넣었기에 이는 마지막 때 종말론적 심판으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는 것을 뜻한다. 아직 영원히 멸망시키실 때가 안되었는데 왜 벌써와서 고문을 하시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2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원어에서는 다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왜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했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귀신이 여러 번 이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역에서는 "가끔" 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여러 번" 으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많은 시간들"이라는 뜻이다.이는 오랫동안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러 번을 뜻할 수도 있는 말이다. "자주" 라고 번역하든지 새번역처럼 "여러 번" 이라고 번역하는 옳다.
그래서 사람들은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놓고 지켰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사막으로 나갔다고 했다. 쇠사슬과 쇠고랑 까지도 끊고 사막으로 나간 것은 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귀신들의 힘인 것이다. 엄청난 힘을 가졌기에 사람들은 이 귀신들린 사람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막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귀신들은 사람들을 싫어해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 사람을 내몰았다는 뜻이다.
30절에서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군대라고 하며 많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대라는 말은 5-6,000명 정도 되는 로마제국 군대의 군단을 뜻하는 말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어린시절 로마제국의 군단이 자기 부모와 가족들을 비롯해서 모든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트라우마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31절에서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께 간청하기를 무저갱 안으로 가버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새번역은 지옥이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 사람들은 깊은 바다 아래쪽의 아주 깊은 곳으로 생각했다. 이는 악한 영들을 영원히 가두는 곳이다. 28절에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는 고문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과 연결이 된다. 아직 종말론적 심판으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때가 안되었기에 벌써 무저갱에 떨어지도록 하시면 안된다는 것이다.
32절에서는 마침 거기에는 산에서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예수께 간청했다고 했기에 많은 귀신들이 간청했다는 뜻이다. 그 귀신들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을 하니 예수께서 허락하셨다. 유대인들의 생각으로 돼지는 부정한 짐승들이기에 더라운 귀신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다. 33절에서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가파른 산비탈로 질주를 해서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바람과 바다를 명하여 잔잔케 하신 예수께서 이번에는 더러운 군대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이다. 이는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께서는 모든 악한 영들도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