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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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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8:4-8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2023. 1. 16.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8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8:4-8 갈릴리의 여러 도시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예수께 나왔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길가와 암반과 가시덤불에 떨어지면 결실하지 못하지만 좋은 땅에 깊이 들어간 씨앗은 백배의 결실을 얻는다며 귀 있는 자만 들으라고 크게 외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실 때 열 두 제자와 다른 여인들도 함께 다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두루 다니시며 복음 전하실 때 합당하게 반응하는 자들만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이다.

4절은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고 각각의 도시에서 예수께로 나아왔다고 했다. 각 고을에서 라는 말은 각각의 도시에서라는 뜻이다. 1절에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셨기에 그 각각의 도시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예수께로 나오는 장면이다. 이는 갈릴리의 여러 도시들에서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어 함께 떼를 지어 예수께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옆동네로 구경왔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모인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5절은 씨 뿌리는 사람이 그의 씨를 뿌리려고 나갔다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에서는 "그 씨" 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아예 "그의" 라는 말을 지우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분명히 그의 씨이다. 영어 번역들도 모두 예외없이 "his seed" 라고 번역했다. 예수께서 많은 무리들에게 예수님 자신에 의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씨"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 가에 떨어져서 밟혔는데 하늘의 새들이 먹어버렸다고 했다. 주의할 것은 원어는 길 위에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길 옆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 길은 로마제국의 포장도로일 것이다. 포장도로에는 말과 마차들이 지나다니기에 사람들은 그 길 가로 걸어다녔을 것이다.

따라서 누가가 밟혔다는 말을 쓴 것은 말이나 마차에 밟혔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발에 밟힌다는 것은 그 말씀이 세상에서 멸시를 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발로 밟아도 그 땅은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기에 딱딱해져 씨가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에 밟힌 채 멸시당한 말씀은 새가 먹어버려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다.

6절은 더러는 돌짝밭에 떨어졌다고 새번역은 번역했지만 원어는 돌이 많이 섞인 밭이 아니라 평평한 암반 위라는 뜻이다. 마가복음에는 암반이 아니라 흙이 살짝 덮혀있는 돌짝밭이라고 되어 있기에 새번역은 누가는 마가복음을 보고 썼다고 보고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마가를 보고 쓴 것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쓴 것이다. 누가는 분명히 돌짝밭이 아니라 암반 위에 떨어졌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의 지형을 볼 때 암반 위가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길은 곁에라는 전치사를 썼지만 암반의 경우는 위에 라는 말을 썼다. 암반 위에 흙이 살짝 덮여있는데 그 위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밟히지도 않고 새가 먹어버지리도 않았기에 자라다가 습기가 없어 말라버렸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싹이 터서 조금 자라다가 말라죽었다는 것이다.

7절은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길은 "옆에"라고 했고 암반은 "위에" 라고 했는데 가시덤불은 "안에"라고 했다. 길 옆에 굴러다니는 씨앗보다는 암반 위의 얇은 흙 위에 뿌려진 씨앗이 조금 더 낫다. 가시덤불 안에 뿌려진 씨앗은 그보다 더 낫다. 점점 더 조건이 좋아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가시와 함께 자랐다. 하지만 가시가 그것을 막았다고 했다. 막았다는 말은 8:33절에서 물에 빠져죽었다고 할 때도 쓴 말이다. 이는 숨이 막혀 죽었다는 뜻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지만 아무런 결실도 없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이다. 농작물의 씨를 뿌리는 것은 결실을 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8절은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이번에는 영어로 "into"에 해당하는 전치사로 되어있다. 가시밭에서는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전치사였는데 이번에는 좋은 땅 속을 향하여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자라서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외치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소리치시며 강조하신 말씀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땅을 모두 갈아 엎고 흙을 고른 뒤에 씨앗을 뿌리지만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람들은 딱딱한 땅에 씨앗을 흩어 뿌린 뒤에 땅을 갈아엎는다. 건조한 지방이기에 땅의 습기를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바람에 날려 딱딱한 길 옆이나 암반 위에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은 갈아엎지 못하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 갈아엎었기에 땅 속 깊이 들어간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단순히 씨를 뿌리러 나갔다고 했는데 누가만이 "그의 씨를 뿌리러 나가서" 라고 기록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몰려든 많은 무리들의 마음 밭에 흘어 뿌리듯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무리들에게 흩어뿌리셨지만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백배의 결실을 거둔다 했으니 최고로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중에는 좋은 밭에 떨어지는 씨앗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씨를 뿌려야 한다. 우리는 단지 씨앗을 뿌릴 뿐이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지방의 밭은 물을 줄 수 있는 텃밭이나 정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적당히 내려주셔야 자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고 어떤 경우에는 물도 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칠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양육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씨를 뿌리는 행위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라게 하려고 애를 쓴다고 그 뿌린 말씀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악한 마음 밭에 떨어진 씨앗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실하지 않는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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