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48-50 예수께서는 죄사함과 구원을 이미 받은 여인이 시몬보다 더 큰 사랑을 표현한 것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앞에서 죄사함과 구원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시며 이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시몬과 여인을 세가지로 비교하시면서 이 여인이 시몬보다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았기에 더 큰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더 큰 사랑을 표현한 여인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며 평안히 가라고 하시는 장면이다.
47절까지는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다가 48절에서는 이제 이 여자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하신 말씀은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용서를 받았다는 말은 이미 완전히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다. 47절에서 시몬에게 말씀하실 때도 완료형으로 이미 많은 죄를 용서를 받았기 때문 더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 말은 과거에 이미 완전히 용서를 받은 것을 다시 확증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현재 완전히 용서를 받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러한 완료형이 과거에 이미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을 공식적으로 확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비유와 함께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 분명히 이미 용서 받은 죄를 사람들 앞에서 다시 확증하여 선포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미 말씀하신 사랑은 그 결과이고 그녀의 구원의 원인은 아니다. 그녀의 행위가 그녀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에 의해 받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 것이 그녀의 사랑의 행위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이미 죄사함 받은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시자 49절에서 함께 누워있던 손님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새번역은 속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그들 사이에서가 아니고 그들의 마음 속에서라는 뜻이기에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는 뜻이 아니고 각자가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생각한 내용은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도 용서하는가?" 라는 것이다.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기에 신성모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기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포는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죄사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독특한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죄사함의 권세를 갖고 있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드러내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몬은 예수가 예언자인지에 대해 염려했지만 죄사함을 선포하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것은 그 이상이라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50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속으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아셨지만 무시하시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라고 누가는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완전히 구원했으니 평안히가라" 고 말씀하셨다. 구원했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이 이미 완전히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잔치 자리에 함께 누워있던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죄사함과 구원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라는 것이 1:77절에서도 "죄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 이라는 말에 이미 나타나있다. 이미 선포하신 죄사함을 구원과 연결시켜 다시한번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나누어주는 존재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표현한 사랑의 행위로 인해 이 여인이 죄사함과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했고 이미 죄사함과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 여인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것 뿐이다. 예수께서 두 빚진자의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도 이 여인이 이미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기에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행위로 표현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우리의 눈물로 비를 내리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서 감사를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더라도 그 크신 사랑을 갚을 수는 없다. 우리의 행위는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