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6:1-7 포로로 잡혀 수레에 묶인 채 짐승들에게 고생을 시키는 바빌론의 신들과 이스라엘을 어미의 태중에서부터 늙을 때까지 품에 안고 다니시는 하나님을 비교해 보라.
하: 우리를 품고 다니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의 품 안에 항상 거하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
이전 말씀에서는 바빌론의 신들과 여호와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공의와 구원을 이루실 유일하신 하나님이라 했다. 이제 가축이 끄는 수레에 실려가는 우상들과 이스라엘을 품고 다니시는 하나님을 비교한다. 우상들을 배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가축들이 땀을 흘리며 큰 고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모두를 품어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운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절에는 벨 신과 느보 신이 등장한다. 벨 신과 느보 신은 바빌론의 두 신들이다. 느보는 바빌론 시의 신인 마르둑의 아들이다. 바빌론의 강력한 두 신들이 포로가 되어 짐승들이 끄는 수레에 꽁꽁 묶인 채 끌려가는 모습이다. 페르샤의 고레스가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그 두 신들을 제거하고 그 신들 대신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바빌론의 전능한 신들이 피곤한 짐승들에게 큰 짐이되고 있는 모습이다.
2절은 우상들이 사로 잡히고 묶여서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모습이다. 고레스의 군대들이 이러한 우상들을 넘어뜨려도 우상들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도 못한다. 고레스의 군대가 수레에 꽁꽁 묶어 끌고 가는데도 탈출도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멋지게 탈출하여 적을 무찌르는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만도 못하다. 영화는 그만두고 1962년 Califonia의 Alcatraz 감옥에서 탈출한 Frank Morris와 함께 탈옥에 동참한 Anglin 형제들과 Allen West만도 못하다. 이들은 인형을 만들어 놓고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고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바빌론의 이 두 신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도 못하고 고레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다.
3-4절은 이제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을 운반한 적이 없다. 3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태어날 때부터 안고 다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내가 너희를 품고 다녔다고 했다. 모태에서 나올 때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자궁 안에서부터 안고 다녔다는 뜻이다. 따라서 태어나기 전부터 안고 다녔고 태어난 뒤에도 계속 안고 다녔다는 것이다.
4절 원어를 보면 이렇게 어릴 때 뿐만 아니라 "너희가 늙어서도 나는 나다" 라고 했다. 항상 동일하게 품고 다니실 것이라는 뜻이다. 백발이 되어서도 안고 다니실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은 장성하면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늙어서도 그 자녀들을 품고 다니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품고 다니겠고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5-7절은 우상들과 하나님을 비교한 뒤 결론을 맺는 것이다. 5절은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라고 한다. 하나님과 비슷한 신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비교할만한 신도 없다는 것이다. 5절 마지막 말은 "우리가 닮았느냐?" 라는 것이다. 수레에 실려 포로로 잡혀가는 바빌론의 신들과 그 백성을 지으시고 끝까지 품고 다니시는 하나님과 어디 닮은 데가 조금이라도 있느냐는 것이다.
6절은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과 은을 내어 놓고 그것들을 모아서 나무로 신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이나 은으로 도금을 한다는 것이다. 우상들의 창조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7절은 우상을 만든 뒤 사람들이 어깨에 매고 신전까지 운반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신전에 내려 놓으면 우상은 그 곳에서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신들에게 울부짖어도 대답하지도 않고 고난 당하는 사람을 구원해 주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만들고 섬기는 세상 영광이라는 신들도 역시 우리의 울부짖음에 대답하지도 않고 우리를 구원하지도 못한다. 우리를 만들지도 못하고 품고 다니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속여 자신들을 위해 죽도록 일하게 하다가 죽게 만든다. 우리의 짐이 될 뿐이다. 우리를 태중에서부터 안고 다니신 분은 하나님 뿐이다. 어려서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품고 다니시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뿐이시다. 그 분이 우리를 품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오셨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품고 다니실 것이다.
품 안에 있는 아기가 품고 다니는 아비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비가 힘들다고 교대하자고 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가볍게 해서 아비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가? 아비의 품에서 열심히 달려서 아비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품 안에 있는 아기가 아비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방긋 웃으며 아비와 눈을 맞추고 웃는 것 뿐이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빠가 좋다고 감사하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찬양과 감사 뿐이다.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면서 하나님 원하시는대로 그 품 안에서 편안히 머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