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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7:24-30

Dawn Word

누가복음 7:24-30

하나님의 결정을 옳다고 여기는 자들과 거부하는 자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1. 7.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7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7:24-30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구경거리는 요한이 아니라 왕궁에 있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만이 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을 옳다고 여기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거부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가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믿고 있던 요한은 이방인과 접촉하고 시체에 손을 대신 예수님의 사역을 듣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여 제자들을 보내서 질문하게 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증거를 직접 보여주시며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한이 자신의 길을 닦는 사람인데 세리들 조차도 요한이 전하는 설교를 받아들였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24절은 요한이 보낸 사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께서는 무리들을 향해 요한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개역은 단순히 요한이 보낸 자들이라고 해서 원어의 의미를 완전히 삭제했지만 원어는 천사 또는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뜻이기에 새번역은 심부름꾼이라고 원어의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고 물으심으로 시작한다. 본다는 말은 주목해서 본다는 뜻으로 놀라운 광경이니 신기한 볼거리를 공연을 구경하듯 한다는 뜻이다. 영어의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이 단어에서 온 것이다. 이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라고 물으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그림은 요한과는 정 반대의 그림이다. 요한은 죽을지언정 꺾이지는 않는 대쪽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리 저리 흔들리며 세상과 타협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사람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다면 실수한 것이라는 뜻이다.

갈대로 번역한 말은 건조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을에서 봄 사이에 비가 오면 풀들이 길게 자라다가 늦은 봄부터 초가을 까지는 비 한방울도 오지 않기에 노랗게 말라버린다. 그런 키가 큰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막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풍경은 전혀 구경거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갈대는 요한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풍경이다.

25절에는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고 다시 물으신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라고 물으셨다. 새번역에서 비단 옷이라고 번역한 말은 부드러운 옷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거친 마로 짠 옷들을 입은 것과는 반대되는 옷들이다. 비단 옷일 수도 있지만 아주 곱게 짠 고급 옷감의 옷들일 수도 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보라!" 라는 말로 청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신다.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갈대들과는 반대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었기에 정말 큰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그런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26절은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라고 물으신다.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느냐? 옳다!" 라고 하시며 그는 예언자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요한은 구약의 어떤 예언자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27절에서는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다고 하시면서 말라기 3:1절을 인용하신다. 그 내용은 "보라!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그가 네 길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준비한다 또는 닦는다고 번역한 말은 "완전히" 라는 말과 "모양을 만든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완전히 다 만들어 사용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이는 길을 완전히 닦아놓고 개통식을 할 준비가 끝난 상태를 말한다.

28절은 이제 불변의 진리를 말씀하기 시작하실 때 공식처럼 쓰시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는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것이다. 새번역에서 세례자 또는 침례자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는 없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는 더 크다고 하신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무시하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최고로 작은 자는 어린 아이 같은 제자들을 영접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진정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들이라는 뜻이다.

29절은 모든 백성들과 세리들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면서 이미 하나님을 의롭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롭다고 했다는 말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결정이 옳다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게 하신 것이 옳다는 것이다. 백성들과 세리들은 이스라엘의 하층민들이다. 특별히 백성들을 세리들과 함께 묶어서 말하고 있기에 세리들처럼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난 죄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옳다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30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들 자신은 요한에게 침례를 받지 않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백성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거부했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결재권자인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며 다시 작성해오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로 보지 않고 구경거리로 여겼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경거리로 여기고 좋아하며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요한이 아니라 왕궁에 있는 왕족들이었기에 예수께서는 구경거리가 광야에 있지 않고 왕궁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쓰레기로 여기고 유대교 공동체의 담 밖에 내던진 사람들만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며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요한과 같이 검소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예수 믿음으로 왕궁 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길 원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하나님보다 높은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못들어오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는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최고로 낮은 자들이 가장 높은 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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