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18-23 예수가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믿고 있던 요한은 이방인과 접촉하고 시체에 손을 대신 예수님의 사역을 듣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여 제자들을 보내서 질문하게 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증거를 직접 보여주시며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나인성에 가셨을 때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장례행렬을 보시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을 살려서 그 과부에게 돌려주셨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방문하셨다며 두려워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이 제자이 모든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서 메시야인지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다.
18절은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알렸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이 모든 일이 설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예수의 활동을 가리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범위를 좁혀 아마도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좀 더 범위를 좁혀 바로 앞에 나온 두 기적을 가리킬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알린 이 모든 일은 단순히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이 두 명의 제자를 보내 물은 내용은 요한이 그동안 예수가 메시야라고 생각했다가 제자들이 알린 소식을 듣고는 메시야인지 아닌지 혼동이 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치료하실 때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과 접촉하고 시체를 만진 것을 듣고 요한은 예수가 메시야가 맞는지 고민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알린 이 모든 일들은 바로 앞에 나온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기적과 과부의 외아들의 시체에 손을 대서 살리신 이야기이다.
요한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요한이 감옥에 갇혀있어 자유롭지 못한 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은 자유롭게 옥에 갇혀있던 요한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9절에서 요한은 옥에서 제자들이 전해 준 소식을 듣고 예수가 메시야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 명의 제자를 증인으로 보낸 것이다. 요한은 그동안 예수가 메시야라고 생각했는데 메시야라면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들을 만나거나 시체를 만지는 것과 같이 율법을 어길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두 명의 제자들을 증인으로 보내 오실 그 분이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 물은 것이다.
구약에서 오실 그분이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오실 그분이란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객들이나 그 백성들을 돌아보시기 위해 방문하시는 여호와나 앞으로 올 예언자나 엘리야를 가리킬 수도 있고 메시야를 가리킬 수도 있다. 본문의 문맥은 분명히 메시야를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요한은 예수가 메시야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한 것인가? 아니면 요한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히 믿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기대한 만큼 진행되지 않아 답답한 나머지 사람을 보내 질문한 것인가?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요한은 분명히 확신했다면서 요한이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이 예수께 사람을 보낸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좀 더 분명하고 논란거리가 없는 입장을 취하라고 촉구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누가복음 3장에서 요한이 예수께 침례를 줄 때 예수가 메시야라는 분명한 증거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증거를 분명히 보았고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함께 갖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러한 일반적인 기대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이 질문한 것이다. 요한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가 오면 이스라엘을 완전히 회복시키실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여 정결한 믿음의 공동체를 미리 준비해 놓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은 자신과 다른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던 메시야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절은 19절에서 요한이 시킨 그대로 예수께 질문하는 장면이다.
21절은 그 시간에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계셨다. 누가가 나열하고 있는 질병들은 그 질병이 주는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 질병이란 일반적인 질병들을 뜻한다. 고통이라는 말은 본래 채찍이라는 뜻이다. 채찍으로 맞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있는 질병들을 뜻한다.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악한 영에 사로잡힌 것이다. 의사였던 누가는 질병과 악한 영에 사로잡힌 것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소경이다. 소경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요한이 보낸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물으셨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도 안하시고 이러한 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예수께서는 말로 대답해주지 않으시고 직접 보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치료를 끝내신 뒤 22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알리라는 것이다. 눈먼 사람이 보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하셨다.
가난한 자들이란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자들이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말슴을 들을 기회가 아예 박탈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보게 하신 뒤에 말씀해 주시며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요한에게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아닌지 의심을 하고 있는 요한에게 증거해서 요한으로 하여금 분명히 믿게하시려는 것이다.
23절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실족한다는 말은 걸려 넘어진다는 뜻인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길에서 넘어져서 그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께 걸려 넘어졌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메시야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라며 걸려 넘어진 것이다.
복이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고 저주란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라며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복이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고 저주란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한 저주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영원한 멸망에 빠질 저주받을 자들이란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친 훌륭한 스승이요 불쌍한 사람들을 돕던 인정많은 사회사업가였다고만 믿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