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11-17 예수께서는 나인성에 가셨을 때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장례행렬을 보시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을 살려서 그 과부에게 돌려주셨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방문하셨다며 두려워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며 이스라엘 중에도 이 백부장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셨고 그 믿음으로 인해 백부장의 종은 건강해진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나인 성에 가셔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 이야기이다.
11절은 원어에서 "그 다음이 되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표현은 누가만 사용했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5번이 나온다. 그 중 네번은 모두 날을 뜻하는 여성형 관사와 함께 쓰였기에 "다음 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7:11절만 남성형 관사로 되어있어 불특정한 시간이 지난 후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는 백부장의 종을 치료한 다음 날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일이 있은 뒤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인이라 불리우는 한 도시로 가셨다고 했다. 나인이라는 성이 갈릴리 남쪽 경계에 있는 도시로 가버나움에서 25마일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문이나 성벽 같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나인은 요단강 건너편이기에 같은 곳이 아니지만 나인이라고 쓰여져 있는 헬멧이 발굴된 것을 근거로 유세비우스와 제롬은 나인의 위치를 정한 것이다.
이어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이 함께 갔다고 했다. 제자들이란 열두 제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던 많은 제자들을 뜻한다. 6:12-17절을 보면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고 했기에 제자들이란 열 둘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미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그 밖의 많은 무리들은 기적을 보고 따라다니던 사람들일 것이다.
12절은 예수께서 성문 가까이 오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다고 했다. 그 어미의 외아들인데다가 그 어미는 과부라고 했다. 아들 하나 밖에 없는 과부가 아들을 잃었다는 것은 이제 이 여인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함께 슬퍼해 주는 장면을 설명한 것이다.
13절에서 주께서도 그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다. 불쌍히 여겼다 또는 가엾게 여겼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내장을 뜻하는 말에서 온 말이다. 가슴이 찡하도록 마음이 아파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하셨다.
14절은 예수께서 그 청년을 살리시는 장면이다. 가까이 오셔서 관을 만지시니 관을 메고 가는 자들이 멈춰섰다. 관에 손을 대는 것은 장례행렬을 멈추라는 무언의 요청이고 명령이다. 시체가 있는 관은 부정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행동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관습을 무시하시고 손을 대신 것이다. 그러자 관을 메고 가는 사람들은 즉시 멈추었고 따르던 사람들도 멈추었을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청년아! 네게 내가 말한다" 라는 것이다. 죽은 청년을 부르시며 "네게" 라는 말이 말한다보다 앞에 온 것은 명령할 때 쓰는 표현이다. 예수께서 청년을 부르시며 "네게 내가 말한다" 라고 큰 소리로 명령하신 것이다. 그 명령은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어나라는 표현은 수동태이지만 마태복음 17:7절에서 변화산의 기적을 보고 엎드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고 했을 때도 역시 수동태이다. 주께서 능력으로 일으키시는 것이지만 본인도 그 동작에 참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5절에서는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하기를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미에게 주셨다. 죽었던 자가 앉아있다는 것은 생명이 돌아왔다는 증거이다. 그 다음에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더욱 명확한 증거가 된다. 그렇게 살아난 자를 그 어미에게 주었다는 것은 열왕기상 17:23절에서 엘리야가 죽었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 그 어미에게 돌려주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16절에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들은 말하기를 위대한 선지자가 일어나셨다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아보셨다고 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17절은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그 주변의 모든 지역에 다 퍼졌다는 것이다. 유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이방지역에까지도 다 퍼졌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회에서 외아들을 잃은 과부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 그 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함께 장례 행렬에 참여한 것이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시며 그 청년을 살리셔서 그 어미에게 돌려주셨다. 이는 예수님의 마음이고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것이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위로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