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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6:24-26

Dawn Word

누가복음 6:24-26

좋은 말만 전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2. 12. 24.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6:24-26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전해서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 앞에 있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때 과거 참된 예언자들처럼 핍박을 받을 것이지만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많은 품삯을 생각하며 기뻐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반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게 말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는 말씀이다. 이는 일반적인 부자들이 아닌 거짓 예언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뜻이다.

24절은 그러나 너희 부요한 자들은 화가있다는 말로 23절 끝부분와 이어간다. 이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다가 핍박을 받은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화를 선포하신 부요한 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빼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언만 전하여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분명하다. 앞에서 복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품삯을 받는 것의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모습이다. 따라서 화가 있다는 말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서 있는 불쌍한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고있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받는다는 말은 현재형이기에 새번역은 "이미 받고있다"라고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개역은 "이미 받았도다" 라고 과거형으로 번역했다. 받는다는 말은 품삯을 완전히 다 받은 것을 뜻하는 말이기에 개역은 과거형으로 번역한 것이다. 본래 "받는다" 라는 말은 "멀리" 라는 말과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이 단어가 본래 갖고 있는 그림은 멀리 갖고 있다 즉 어떤 것을 멀리 둔다는 뜻이다. 사람의 경우는 멀리 떠나있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의 쓰임은 주로 사도행전 15:20절처럼 본래 뜻 그대로 "멀리 두라"는 뜻으로 쓰인 경우가 7번이 나온다. 또 마태복음 14:24절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도 여섯번이 나온다. 오늘 말씀 24절처럼 품삯을 이미 다 받았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도 여섯번이 나온다. 어떤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일 경우 파생된 의미는 본래 어원을 분석해보면 그 의미가 어떻게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 받았다는 말은 품삯을 다 받은 뒤 멀리 가버린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이 땅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기에 이 땅에서 이미 다 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자신들의 편안함을 구입하기 위해 썼고 그들의 부를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은 단순히 부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복이 있는 자들도 핍박을 받으며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받을 품삯이 많고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에게 그렇게 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26절에서도 역시 거짓 예언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가 있는 부자들은 제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고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을 때 화가 있다는 뜻이다.

25절에서도 "너희에게 화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지금 배가 부른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미 이 땅에서 품삯을 이미 다 받아서 배부르게 되었기에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는 영원히 굶주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지금 웃고 있는 자들은 화가 있다는 것이다.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받을 화는 세단계이다. 지금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을 누리며 웃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 앞에서면 굶주리다가 슬퍼하며 마지막에는 큰 소리내서 통곡을 하게 되는 것이다.

26절에서는 이렇게 화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진다. 모든 사람이 너희에게 좋게 말할 때 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축복의 말씀만 전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도 하나님께서 바빌론 군대를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한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존귀와 영광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과도 같다.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똑같이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해서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에 복이 있다고 한 것과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전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화가 있다는 것은 정확히 반대의 모습으로 대조가 되는 그림이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소수의 사람들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며 공격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잘못을 지적하며 회개하라는 말씀은 빼고 잘 살게 되고 복을 받으며 자손들이 잘된다는 희망적인 말씀만 전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이 땅에서 사는 삶이 전부라면 그렇게 좋은 말만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짧은 이 세상을 마치고 나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심판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 뜻대로 전하며 사는 사람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께 많은 보상을 받게 된다면 지금 받는 고난을 기뻐하며 춤추며 뛰놀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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