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20-23 예수께서는 예수님 앞에 있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따라가는 삶을 살 때 핍박을 받을 것이지만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많은 품삯을 생각하며 기뻐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평한 곳에서 멈춰서셨는데 거기에는 많은 제자들과 사방 각지에서 몰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치료도 받고자 하여 왔는데 예수님을 만지기만 해도 고침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병 고침을 받은 뒤 이제 말씀을 들을 차례이기에 예수께서 몰려온 무리들에게 누가 복이 있는 자인지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20절은 예수께서 그의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누가는 특별히 "그의 눈을 들어" 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나 무슨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별히 제자들을 위해 특별한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들이란 12 제자들이 아니라 17절에 나온 큰 무리의 제자들이다. 큰 무리의 제자들과 병을 치료 받으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제자들과 장차 제자가 될지도 모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일 수 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다보니 가난한 사람이다. 이는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제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자들이란 자신들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여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인 것이다.
21절은 "지금 굶주린 자들은 복이있다! 왜냐하면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굶주림이란 실제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 굶주린 것과 목마른 것은 영적인 만족을 위한 갈망을 표현할 때 쓰인 말이다(사 55:1-2). 특별히 이사야 49: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잡혀있는 자들과 흑암에 있는 자들이 길에서 먹겠고 풀밭에 앉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49:10절에서는 그들이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편 23편에서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고 한 것도 영적인 만족을 위한 갈망을 해결해주신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만족을 주신다는 것이다.
22절을 보면 그러한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22절은 먼저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할 때 너희에게 복이있다고 하신다. 미워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태도를 나타낼 때 쓰인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태도이다. 이어서 그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미워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한 세가지가 나온다. 세가지가 나란히 나올 때는 항상 점층법이다.
첫째는 배척한다 또는 멀리한다는 말로 번역된 말이다. 이는 멀리라는 말과 경계선을 표시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복이 있는 자들을 따로 구별하여 표시해 둔다는 뜻이다. 이는 미워하는 것의 첫단계이다. 이 단계는 신앙 공동체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 접촉도 금지되는 것이다. 이 단계는 마치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것과도 같은 단계이다.
둘째는 욕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따로 표시해서 금을 그어 놓은 뒤에 제자들에게 욕한다는 것이다. 욕한다는 말은 심한 말로 책망을 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4절과 마가복음 15:32절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욕할 때 썼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 백성들에게 가짜 그리스도라고 심한 말로 책망을 들은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그렇게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14절에서 베드로는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말했다. 격리에서 한단계 더 발전하여 저주하는 말을 듣게 되는 단계이다.
셋째는 너희 이름이 악하다고 하여 내쫓을 때이다. 너희의 이름이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들 각자의 이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주석가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름 때문에 악하다고 유대교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누가복음이 기록되던 때는 이미 크리스천들이 회당에서 쫓겨난 뒤였기에 누가는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증인들에게 듣고 적은 것이다.
23절은 "기뻐하라 바로 그날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날이란 마지막 때가 아니라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날 때이다. 기뻐하라는 말은 동료 유대인들에게 악하다고 욕을 먹고 쫓겨날 때 복이 있다고 했기에 그 말을 듣고 소리치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어서 뛰놀라는 말은 소리치며 기뻐한다음에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장면이다. 뛰놀라는 말이 춤을 추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원어에서는 "왜냐하면 보아라!" 라는 말로 이어진다. 하늘에 있는 너희 상이 큰 것을 보라는 것이다. 하늘이란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을 나타내는 비유이다. 상이라는 말은 일꾼이 받을 품삯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품삯을 주시는데 그 품삯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그렇게 격리되고 욕을 먹고 쫓겨날 때 펄쩍펄쩍 뛰며 기뻐해야할 이유는 바로 하늘에 있는 품삯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해질무렵 일을 마치고 나면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나누어주는 장면이다. 우리도 일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정말 많은 품삯을 주실 것이다.
또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에게 너희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이라고 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조상은 아니다. 그들의 조상이란 육신의 조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욕하고 죽이던 악한 조상들을 가리킨다. 이는 핍박을 받을 제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제자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시는 말씀이다. 앞으로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는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믿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낙심할 것이 아니라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면 정말 많은 품삯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을 생각하며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기쁨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