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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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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6:17-19

산에서 내려오셔서 만난 큰 무리들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2. 12. 22.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6:17-1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평한 곳에서 멈춰서셨는데 거기에는 많은 제자들과 사방 각지에서 몰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치료도 받고자 하여 왔는데 예수님을 만지기만 해도 고침을 받았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 열 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20-49절에 나오는 평지설교의 무대 배경을 설명하는 도입부분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지로 내려오시자 큰 무리가 모여말씀도 듣고 치료도 받았다는 것이다.

17절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내려오셔서 평평한 장소에 서셨다고 했다. 평평한 장소라는 말이 해수면보다 한참 높은 고원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무리들이 환자를 데리고 온 것을 근거로 평평한 장소라는 말이 높은 산에 있는 고원이라기 보다는 산자락 근처의 평평한 곳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평지나 산으로 로 볼 수도 있는 곳일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고원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산이나 평지로 볼 수 있는 애매한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누가복음의 평지설교와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단 한번만 하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평평한 곳이라는 말을 고원이라고 해석하거나 산으로도 볼 수 있고 평지로도 볼 수 있다고 억지로 가져다 붙일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무리들을 만난 상황과 팔레스타인의 지형을 볼 때 평평한 장소란 완전한 평지라기 보다는 경사가 급한 산 아래쪽 부분의 경사가 완만하고 비교적 평평한 곳일 것이다. 예수께서 내려오시다가 평평한 장소에 서셨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예수께서 서셨다는 말을 "he stood" 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그러나 누가복음 8:44절과 18:40절을 보면 이 말은 멈춰섰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다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무리들을 만나 멈춰서셨다는 뜻일 수 있다

멈춰서신 이유는 그의 제자들의 큰 무리와 백성들의 대단한 군중들 때문이다. 백성들이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어서 그 백성들은 모든 유대지역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지방에서 왔다고 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말이 그 백성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말이기에 이방인들이라기 보다는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다. 대부분 주석가들도 문맥상으로 분명히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고 본다.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인 지역 전체 뿐만 아니라 이방지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도 퍼졌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열 두 제자들이 있다. 둘째 수많은 무리들을 이룬 그 밖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다니며 배우던 수많은 사람들이다. 셋째 그 밖의 많은 군중들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소문을 듣고 몰려와 치료를 받으러 와서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18절은 그들이 그렇게 사방에서 몰려온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자기들의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기 위해 왔다고 했다. 또 더러운 귀신에게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도 고침을 받았다고 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는다는 말과 더러운 귀신에게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이 서로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전자는 "healed"로 후자는 "cured"로 번역했다. 전자는 치료를 받는다는 뜻이지만 후자는 본래 옆에서 섬기거나 돌본다는 뜻이다. 아픈 환자를 간호한다는 말이 나중에는 병을 치료할 때도 쓴 말이다. 따라서 후자는 돌봄을 받았다는 그림을 포함하고 있다.

19절은 모든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자 무리들 틈 사이를 어떻게든지 뚫고 손을 뻗어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능력이 그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들을 낫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만지기만 해도 나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너도 나도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한 것이다. 올바른 믿음이 아닌 미신적인 태도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고 그 능력이 예수님으로부터 나가도록 해 주신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오늘 말씀에 나온 장면과 마찬가지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과 가까이 늘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조금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늘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지는 않지만 호기심을 갖고 듣거나 자신의 병이나 자신의 어려운 문제를 혹시 해결 받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대부분 처음에는 오늘 말씀에 나온 미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나왔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교회에 나와 기도하며 자신의 진로나 사업등의 문제나 질병이나 자녀의 문제를 놓고 막연히 빌기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그 능력이 예수님으로부터 나가도록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만지기만 하면 낫는다는 미신적인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점점 가까워져서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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