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12-16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 열 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잡으려고 덫을 놓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중 어느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신 뒤 아무 대답이 없자 손이 마비된 환자를 불러내어 손을 내밀라고 명령하시니 그 사람의 손이 치료되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기도하신 뒤 열두 제자를 택하신 내용이다.
때 또는 날이 되었다는 표현은 5:1-6:16절에서 6번이나 반복된다.5:27-39의 레위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앞에 세개 뒤에 세개의 이야기가 모두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말로 되어있다. 5:1-11절은 물고기가 잡힌 기적을 보고 베드로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일행들이 예수를 따라가는 내용이다. 5:12-16절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내용이고 5:17-26절은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는 내용이다. 이 세가지 이야기 모두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들을 부르시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5:27-39절을 중심으로 그 다음 세가지도 역시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말로 시작한다. 6:1-5절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 용서하신 내용이고 6-11절도 안식일에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내용이다. 6:12-16절은 예수께서 부르신 그러한 죄인들의 목록이다. 따라서 5:1-6:16절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이 중심이고 그 앞뒤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예수께서 그러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따라오라고 불러주셨다는 내용인 것이다.
12절도 역시 "그 날들이 되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날이 언제인가 하면 기도하러 산으로 들어가시기 위해서 나가신 날들이다. 나가셨다는 말은 개역에서는 단순히 "가사" 라고 번역했지만 그 의미는 "나가셨다"는 뜻이다. 논쟁을 벌이던 가버나움에서 나가셨기에 새번역은 "떠나가셨다"고 번역한 것이다. 머물고 계셨던 곳에서 나가셔서 산으로 기도하러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산에 들어가셔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했다. 밤이 새도록 이라는 말은 통하여 라는 말과 밤을 지킨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로 밤 전체를 꼬박 지킨다는 뜻이다. 밤에 근무를 서는 보초처럼 밤 전체를 꼬박 새워가며 기도로 지키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밤이 새도록 계속 계셨다는 것이다.
13절은 낮이 되었을 대에 그의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 밤을 지키시고 낮이 되자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단순히 열 두 제자를 부른 것처럼 증거했지만 누가는 그의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과 그 중에서 열 둘을 뽑으셔서 사도라고 부르셨다고 했다. 마태와 마가를 보아도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는 열 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만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신 중에서 열 둘을 뽑아서 사도라고 불러주셨다고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둘을 제자들의 대표로 뽑으신 것이지 열 둘만 제자로 뽑으셨다는 뜻은 아니다.
원어에서 14절은 "시몬, 그가 베드로라고 이름지어 주신"이라고 되어있다. 누가는 본래 이름을 먼저 말하고 예수께서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말을 뒤에 붙여 마가보다 훨씬 부드럽고 정확하게 기술했다. 이어서 "안드레, 그의 형제" 라고 해서 시몬과 안드레가 형제임을 밝혔다. 마가는 베드로에 이어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말하며 이 셋을 중심제자로 썼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별명까지 덧붙여 이 둘을 강조햇다. 하지만 누가는 안드레를 두번째에 두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 다음에 아무 설명없이 이름만 소개했다.
15절에서는 또 다른 야고보가 나오기에 누가는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또 다른 시몬도 나오기에 열심당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셀롯이라는 말의 뜻은 열심당이라는 뜻이기에 새번역은 열심당으로 번역하고 난하 주석에 "셀롯"이라고 표기하고 개역개정은 반대로 셀롯이라고 표기한 다음 난하 주석에 "열심당"한 것이다. 이는 열심당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이 AD 70년 유대-로마 전쟁 때이기 때문이다.
셀롯이라는 말이 로마와의 전쟁 때 활동했던 극단적인 애국주의자들을 부른 전문용어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은 예수님 시대와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해석이라며 "열정적인" 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아마도 열심당이 분명한 정치집단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셀롯이라는 말은 비느하스(민 25:11)와 엘리야(왕상 18:40; 19:10)의 열정을 흠모하여 율법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던 사람들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심당이 AD 70년 유대-로마 전쟁 때 분명한 정치 집단으로 드러났다 해도 그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열심당이라는 극단적인 군사적 집단이 나중에 그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미 예수님 당시에도 존재했었고 시몬도 거기에 속했을 수도 있다.
같은 말이 사도행전 21:20절에서는 율법에 열심있는 자가 수만명이라는 말에서도 나오기에 셀롯이라는 말이 열심당이아니라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열심당이라는 극단적인 무장항쟁을 했던 독립투사들이 AD 70년에 갑자기 조직되어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기에 예수님당시에도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16절에서는 두명의 유다가 나온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이스카리옷 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해석은 카리옷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거짓말쟁이를 뜻하는 아람어에서 왔다는 해석이다. 원어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 배신자가 된" 이라고 되어있다. 이스카리옷이 거짓말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배신자가 된"이라는 설명이 그 이름을 요약해서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이름이 중복될 때는 가문이나 속한 그룹이나 출신지역으로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전통적인 해석을 때라 이스카리옷은 카리옷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스카리옷이 거짓말장이라는 뜻이라면 배신자가 된 사람이라는 설명은 쓸데없는 중복이다. 아마도 유다만이 갈릴리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카리옷 사람이라고 표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 열 둘을 뽑으실 때 밤이 새도록 계속해서 기도하신 후에 뽑으셨다는 것이다. 5:1-6:16절 전체의 문맥을 통해서 본다면 예수께서는 완벽한 의인들 중에 제자를 뽑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셔서 회복시켜 주시고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울 때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을 뽑을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처럼 마음을 다해 기도한 뒤에 세상적으로 볼 때 흠이 많은 죄인들을 제자로 불러서 말씀으로 훈련하며 변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하신 명령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