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22-26 예수께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의 불평을 아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과 중풍병자를 치료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하시며 자신이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것을 중풍병자를 치료하심으로 보게 하셨다.
이전 말씀은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달아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던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인자는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셨다며 그 병자를 치료하시는 내용이다.
22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며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불평한 것과 연결한다. 생각이나 의논으로 번역된 말은 생각이나 의심 또는 논쟁이나 불평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속으로 불평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알아들을 수 없도록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불평을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신 것이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것은 예수님의 예언적인 능력이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본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너희들 마음 안에서 무엇을 의논하느냐고 말씀하셨기에 이는 분명히 예수께서 그들의 말을 듣고 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께서는 23절에서 어느것이 쉽겠느냐며 두가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이다. 어떤 이는 둘 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나중의 것을 할 수 있다면 먼저 것도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라며 엄격하게 말하자면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죄사함을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더 쉬워보인다.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어느것이 쉬우냐고 질문하신 것은 사람들에게는 둘 다 불가능한 일이기에 둘 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죄 용서는 증명될 수가 없기에 죄 용서를 선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인간의 관점에서 어떤 것이 쉬우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가지신 예수께서 하시기에 어떤 것이 쉬우냐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죄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이다. 더구나 죄사함을 받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병이 나은 것은 즉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죽을 일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 자신이 하기에는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주석가들은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24절은 예수께는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이 훨씬 더 쉬움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알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알게 한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자가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졌다는 것을 완전히 알게 하려고 죄사함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인자가 땅에서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와 대비되는 말이고 종말론적인 용서가 종말이 오기 전에 아직도 이 땅에서 생명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종말론적 용서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하지만 죄사함의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어서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길 "일어나라 그리고 세 침상을 집어 들고 네 집으로 가라" 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자 25절에서 그 사람은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서 그 누웠던 것을 집어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집을 향하여 갔다. 집을 향하여 갔다는 말은 집을 향하여 멀리 가버렸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점점 멀어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말이다. 멀리 가버렸다는 말은 일시적으로 치유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치유된 것을 나타낸다. 이는 죄사함을 선포하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신 것이다.
26절은 모두가 놀라서 말했다고 했다. 놀랐다는 말은 너무 놀라서 정신이 몸 바깥에 서 있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정신이 나간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또 두려움이 충만해져서 말하기를 우리는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고 했다. 이 두려움이 충만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이 나타난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신기한 일이란 생각이나 기대와는 반대가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예수께서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신 결과는 눈에 볼 수 없기에 예수께서 선포하신 죄사함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신 것이 바로 중풍병자가 침상을 들고 멀리 사라지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주님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새로운 영원한 몸을 입음으로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