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17-21 어느날 예수께서 병자들을 계속해서 치료하고 계실 때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는데 무리들 때문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지붕을 뜯고 병자를 예수 앞에 달아내렸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의 죄사함을 선포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한 도시에 가셨을 때 한 나병 환자가 엎드려 치료해 달라고 하자 그를 만지시며 치료하시고 즉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셨다. 그 소문을 듣고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오자 예수께서는 외딴 곳으로 피하셔서 기도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어느날 병자들을 치료하고 계실 때 온 이스라엘에서 온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감시하고 있는 자리에서 한 중풍병자에게 죄용서를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5:1절과 5:12절과 때가 되었다는 말로 시작하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말씀 17절도 역시 "그리고 어느 날이 되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가는 똑 같은 말로 시작하며 세 개의 기적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한다. 바로 그 어느 날에 예수께서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바리새파와 율법 교사들도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 계속 가르치고 계시는 동안에 바리새파와 율법 교사들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역에서 "교법사" 라고 번역하고 새번역은 "율법교사"라고 번역한 말은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라고 번역한 말과는 다른 말이다. 교법사나 율법교사로 번역한 말은 율법이라는 말과 선생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그러나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로 번역한 말은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17절에 나온 교법사 또는 율법교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단 세 번만 나온다. 사도행전 5:34절에서 가말리엘을 설명하는 말로 썼다. 디모데전서 1:7절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그 의미는 모세오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둘 다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동일한 의미라고 말한다.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누가는 율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갈릴리 뿐만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지역에서 다 왔다는 뜻이기에 과장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가 이 시점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언급한 것은 그의 청중들에게 여기서 벌어지는 충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비춰주는 것이다. 단순히 과장법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소문을 듣고 조사하러 왔을 것이다. 갈릴리의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닥쳐올 십자가의 고난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7절 끝부분은 주의 능력이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는 순간마다 함께 하셨다고 했다. 주 앞에 관사가 없을 때는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병자들을 고칠 수 있게 한 것이다.이는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와서 치료하게 하는 권능은 하나님 그 자신의 권능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병자들을 치료하고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8절도 12절과 마찬가지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역시 놀라운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침상 위에 한 사람을 메고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계속해서 중풍병에 걸려있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중풍병에 걸려있었다는 말은 본래 "옆에" 라는 말에 "풀려있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본래 어원은 어떤 물건을 분해해서 나란히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이 사람의 관절 마디 마디가 다 풀려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마치 나사가 다 풀려 작동이 안되는 기계와도 같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를 안으로 운반하여 예수님 앞에 놓을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19절은 무리들 때문에 어떻게 그를 안으로 운반할지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진흙을 통하여 그를 침상과 함께 예수의 앞에 한 가운데에 내렸다고 했다. 한글 번역에 있는 기와를 벗긴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진흙"이라는 말이다. 원어에는 기와를 벗긴다는 말은 진흙이나 진흙으로 만든 토기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진흙을 통해서 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붕에는 기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지역은 건조한 기후이기에 비가 잘 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의 지붕은 대부분 나무를 얼기설기 놓은 평평한 것이다. 비가 새지 말라고 그 위에 진흙을 발랐는데 그 진흙이 말라 단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도구 없이도 손으로 간단히 지붕을 뚫을 수 있었다. 영어 번역들에서 타일이라고 번역한 것은 실제 진흙 타일이 아니라 흙을 발랐는데 마른 것을 뜻한다.
20절은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시되 "이 사람아! 너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히 병만 나았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을 뜻하는 말이다. 죄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보고 병자들은 죄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뜻으로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절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서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라고 했다. 마가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라고 했는데 누가는 "마음 속으로"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2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챘다고 했기에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이나 아니면 귓속말로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 부분에서 강조점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친구들의 믿음이다. 친구들은 나사가 다 풀려 뼈 마디 마디가 다 분리된 것과 마찬가지인 중풍병자를 침상에 눞혀 예수께 데려왔다. 무리들 때문에 다가갈 수 없자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다. 예수님께만 데려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데려온 것이다. 그 믿음을 보시고 병자의 죄를 용서하셔서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