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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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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4:28-30

죽이려는 무리들을 압도하시고 지나가신 예수님

2022. 12. 2.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4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4:28-30 분노가 충만한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낭떠러지에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셔서 물러나게 하시고 그들 사이를 지나서 가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시자 구약시대 중 가장 타락했던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교하시며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는 이방인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이 화가 나서 예수를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시는 장면이다.

28절은 이것을 들은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났다. 화가 잔뜩 났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분노가 충만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충만했다고 할 때도 쓰는 말이다(행 2:4; 4:8, 31; 9:17; 13:9). 사도행전 5:17절에서는 시기가 충만했다고 할 때도 썼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그 반대로 분노나 시기가 충만하게 되는 법이다.

이들에게 분노가 충만하게 된 원인은 엘리야나 엘리사를 거절한 이스라엘 조상들처럼 나사렛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다고 예수께서 저들을 책망한 것 때문이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도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을 핍박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책망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보았지만 사람들은 분노가 충만해서 땅을 보고 스데반을 죽여버렸다. 나사렛 사람들이 분노가 충만한 장면도 마치 스데반을 죽이던 사람들과 똑 같은 모습이다.

29절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일어나서 예수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이어서 그들은 예수를 산의 낭떠러지까지 끌고 갔다. 원어는 산의 눈썹까지 끌고 갔다고 되어있다. 산꼭대기 부근에 있는 낭떠러지가 마치 서양인들의 눈썹이 있는 자리처럼 되어있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 같다. 그 동네는 산에 건설되었다고 했다. 거기서 아래로 집어 던져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나사렛 사람들은 스데반처럼 회당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지 않았을까?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을 모독한 죄는 돌로 쳐죽이는 것이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낭떠러지에서 던져버리려고 한 것은 율법에 따른 공식적인 처형방법이 아니다. 본래는 돌로 쳐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본래 예수를 돌로 쳐셔 죽이려고 했지만 안식일에 돌을 들어 일을 한 것이 되기에 산의 눈썹에서 던져버리려고 한 것이다.

30절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서 가버렸다고 했다. 누가는 어떻게 그렇게 가실 수 있었는지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낭떠러지로 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한복음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주석가들은 이것이 4:10-11절의 성취라고 본다. 마귀가 뛰어 내리라 하면서 인용한 시편 91:11-12절은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받아 주셔서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셔서 떨어지지 않게 해 주셨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사탄의 세번째 시험과도 같다. 사람들은 예수를 사탄이 제시한 그러한 자리에 세우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두지 않으신 것이다.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골짜기 아래로 뛰어 내리면 천사가 받아준다고 했는데 예수께서는 거절하셨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떨어뜨리도록 두셔서 천사가 받아주는 기적을 보여주셨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죽이려는 무리들을 혼자서 뚫고 탈출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본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어를 보면 "그들의 가운데로" 라는 말이 어순이 바뀌어 강조된 위치에 있기에 어떤 기적을 암시하는 것이이 분명하다. 뭔가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소리없이 행했기에 놀란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비켜준 것이다. 뭔가 깜짝 놀랄만한 능력을 보여주셨기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았지만 다시는 감히 손을 댈 생각을 못한 것이다.

예수께서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시편 91편의 기적으로 천사가 받아줘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사탄의 그러한 제안을 했을 때도 거절하셨는데 여기서 갑자기 그런 기적을 보여주셨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수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놀라운 힘을 드러나지 않게 보여주셨을 것이다. 그래서 깜짝 놀란 무리들은 예수의 그 능력에 압도되어 다시는 감히 손을 못대고 길을 비켜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 말씀에서 누가가 특별히 강조한 말은 "그들의 가운데로" 라는 말이다. 만약 그 때 예수께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가 천사가 받아주는 장면을 모두에게 보여주셨다면 모두가 다 엎드려 경배하며 메시야로 인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은밀한 힘을 보여주셔서 두려워하며 물러서게만 하신 것이다. 놀란 무리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무리들은 길을 내 주었고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로 가신 것이다. 이는 절대로 몸싸움을 하다가 탈출하셨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이기 위해 많은 무리들 앞에서 기적을 일으키신 적은 한번도 없다. 단지 소수의 믿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기적을 통해 보여주신 것 뿐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 은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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