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16-22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하시자 그 은혜로운 가르침에는 감동을 받고 놀랐지만 예수님이 미천한 출신이기에 예수님을 거부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되-돌아오셔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가르치시자 그 소문은 온 갈릴리에 퍼졌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셨다. 이어지는 장면은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는 장면이다.
16절은 예수께서 자라나시던 곳인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늘 하시던 대로라는 말은 개역에서는 "자기의 규례대로" 번역했다. 같은 말이 사도행전 17:2절에도 나온다. 개역은 누가복음 4:16절과 똑같이 "자기의 규례대로"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같은 말을 "자기의 관례대로"라고 번역했다. 모두 똑같이 자기의 관례대로" 라고 하든지 아니면 "늘 하던대로" 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 말은 새번역처럼 "늘 하던 습관 대로" 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늘 하던 습관대로 라는 말에 바로 이어지는 말은 "안식일에" 라는 말이다. 그 다음에 "회당 안으로" 라는 말이 나오기에 예수께서는 안식일만 되면 회당 안으로 들어가는 습관이 있으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Stein은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이는 습관을 예로 들면서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던 습관이 있으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Stein, 154-55)
그러나 다수의 주석가들은 같은 말이 나오는 사도행전 17:2절을 근거로 자기의 습관대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다고 해석한다. 누가는 자신의 시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사역 전체에 비추어 볼 때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가르치시던 사역의 습관을 따라 나사렛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고 가르치시려고 서셨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단지 서 있을 뿐이고 성경 두루마리를 골라 주는 것은 회당장의 몫이다. 그래서 17절에서 회당장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담긴 두루마리를 예수께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곳을 찾으신 것은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어서 이렇게 기록된 곳을 발견하셨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회당의 절차에 따르면 먼저 율법서를 읽은 뒤 예언서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회당의 관습에 비추어 이 구절을 해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해석이다. 오늘날 유대교 회당의 관습이 1세기 회당의 관습과 똑같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7절의 초점은 받은 이사야의 말씀 두루마리 중에서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가르치실 본문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18-19절은 이사야 61:1-2절에서 온 것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이사야61:1-3절은 메시야가 직접 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 자체가 메시야나 그리스도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다. 본래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장면인데 메시야는 이 땅의 나라들의 왕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이시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메시야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란 이사야 시대에는 일차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되어있던 유대 사람들이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기에 이제 악한 세력들에게 포로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이다. 주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포로된 자에게는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는 눈뜸을 선포하고 억눌린자는 풀어주게 하셨다는 것이다. 19절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때가 바로 주님의 은혜의 해라는 것이다. 그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20절에서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 그 맡은 자에게 주고 앉으셨다. 앉으셨다는 말은 회중석에 돌아가 앉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앉으셔서 가르칠 준비를 하셨다는 뜻이다. 그러자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다 예수님을 응시했다. 예수께서 읽은 구절에 대해 뭐라 말씀하실지 들으려고 모두가 예수께 집중하고 있는 장면이다.
원어에서 21절은 저희에게 말씀하기를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읽은 구절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그 말씀의 핵심은 오늘 이 글이 너희 귀에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오늘이란 구원의 날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통해 이사야가 예언한 그 구원의 날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구원의 날이란 오늘 본문에 있는 그 날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금도 오늘이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날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가 바로 오늘이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원어에서 귀에 성취되었다고 한 말은 예수께서 전하시는 말씀이 귀에 들리는 순간부터 이미 그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새번역은 22절 첫부분을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에 대해 증거했다" 라는 뜻이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말을 새번역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 감탄하며 칭송했다는 뜻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반대로 대적하는 증언을 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그 가르침 자체는 인상깊었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대적하는 증언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말은 "그들은 그의 입에서 걸어나오는 은혜로운 말들에 대해 깜짝 놀랐다" 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해방시켜준다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제 성취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제 왔다고 하니 크게 기뻐한 것이고 또 그러한 예언의 의미를 깊이 해석해서 가르치는 내용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가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그들은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은 정말 놀랄만큼 은혜스럽지만 그 사람의 출신을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며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마가복음 6:3절은 "마리아의 아들" 이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을 볼 때도 이들은 예수가 아무 것도 아닌 미천한 존재라며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23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은 예수를 의사라 부르며 가버나움에서 행한 것처럼 병이나 고치라는 투로 말한다고 하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미천한 출신 때문에 그 가르침에는 놀랐으면서도 거부한 것이다. 오늘날도 나사렛 사람들과도 같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