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23-38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소개하는데 아브라함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예수는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이전 말씀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또 성부 하나님의 음성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 독생자이심을 증명해 주신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시점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에서 시작하면서 내려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거꾸로 위로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한다. 마태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왕으로 오셨다고 보았기에 다윗 왕가를 중심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아브라함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가서 아담을 거쳐 하나님까지 올라간다. 누가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마태와 누가는 둘 다 요셉이 법적 아비라고 기술한다.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이 예수님의 조상에 들어있는 것과 다윗에서 아브라함까지 조상들의 이름은 마태와 누가가 일치한다. 다윗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조상들의 이름들 중 일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철자법이 다른 것 뿐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의 이름들은 마태와 누가가 서로 다르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가 서로 다른 이유를 보통 세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 그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은 경우가 있어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는 누가복음 3:23절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마리아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엘리의 아들(손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족보가 마리아의 아버지의 계보라는 것이다. 셋째는 마리아는 남자 형제도 없는 외동딸이었다는 것이다. 에스라 2:61절에는 아들이 없는 집에 장가들어 그 장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이 나온다. 그렇게 보면 요셉은 딸 하나 뿐인 엘리의 딸 마리아에게 장가들어 엘리의 양자가 된 셈이다.
고대 근동 사람들의 족보는 복잡하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었고 완전하게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태와 누가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족보를 설명한 것이지 실제 모든 계보를 완전하게 재구성한 것이 아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었기에 유대의 왕들의 족보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에 아브라함과 다윗 그 이상의 족보를 언급하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예수님의 침례(3:22)와 족보(3:38)와 시험 받으신 내용(4:3, 9)에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 특별히 침례와 시험받으신 것은 성령님을 언급함을 통해 공식적으로 연결된다. 3:21-4:13절에 나온 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다면 누가의 관심은 분명히 예수님은 계속 반복하여 사용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있다. 누가가 아브라함 보다 더 위로 올라가며 아담까지 연결한 것은 예수님이 온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23절은 "그리고 그는"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바로 예수시다 삼십세쯤 되었을 때 시작한"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이라는 말은 22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뒤 바로 이어 "그리고 그는 바로 예수시다" 라는 말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라는 것이다.
개역은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 라고 했지만 원어에는 "가르치심"이라는 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은 "활동을 시작하실 때에"라고 표현을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원어는 단지 "삼십세쯤 되어서 시작하신 분" 이라는 뜻일 뿐이다. 23절의 초점은 "그리고 그는 예수" 라는 말에 있다. 예수님은 30세쯤에 시작하신 분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요셉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실제로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인해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24-27절에 나온 인물들은 스룹바벨을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28-31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나단이다. 마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갔지만 누가는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을 통해 다윗과 연결한다. 누가는 고니야(렘 22:24)에서 끊어진 솔로몬 왕가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맞지만 솔로몬을 통해 이어진 왕가는 고니야 즉 여호야긴에서 끊어졌기에 다윗의 아들 나단과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31절 끝부분에서 34절까지 이어진 다윗에서 아브라함까지는 일부 이름의 철자가 다른 것만 제외하고는 마태와 똑같다. 34-38에서는 아브라함부터 아담의 창조까지 이어간다. 누가의 관심은 예수님의 족보를 단순히 첫 사람 아담에게 연결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의 후손으로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누가의 족보는 놀랍게도 하나님에서 끝이 난다. 이 모든 족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손들이고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누가는 이러한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순종의 아들이었다는 것도 우리에게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은 영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