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9-11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요한이 외쳤을 때 무리들은 요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요한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과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요한은 도시 문명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손들이라 부르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생산하라며 하나님께서는 쓸모없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즉시 회개하라며 회개는 이웃을 사랑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9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8절과 연결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8절에서 회개에 걸맞는 열매를 맺으라고 했는데 9절에서 "그러나" 라고 연결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신호이다. 그것은 도끼가 이미 나무들의 뿌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무를 찍어버리려고 나무의 가장 밑둥에 도끼날을 댄 것이다. 한번 도끼를 높이 쳐들어 찍어버리기 직전의 순간을 정지시킨 화면인 것이다.
이어서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어서 불에 던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주로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이다. 이사야 5:2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만들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열린 것은 들포도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요한이 비유로 말하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거대한 나무가 아니고 포도나무이다. 도끼로 한번 찍으면 끝이 나는 나무이다. 그걸 한 손으로 집어들어 불에 던져버리는 장면이다.
그러자 10절에서 무리들이 요한에게 질문하며 말하길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했다. 질문했다는 말은 계속적인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이기에 무리들 중 많은 사람이 계속 반복해서 질문하는 장면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미 찍어버리려고 겨냥한 도끼날을 멈추게 하는 참된 회개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모두가 두려운 마음으로 여기저기서 같은 질문들을 요한에게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이 11절에 이어진다. 그것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자는 속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새번역에서 속옷이라고 번역한 말은 맨살 위에 입는 일상복이다. 보통 당시 유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옷 하나만 맨살 위에 입고 살았다. 먼길을 여행할 때는 겉옷이자 이불에 해당하는 곳을 하나 더 입었다. 따라서 속옷조차도 없는 사람은 정말 가난한 사람이다. 실제로 속옷이 없다기 보다는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일상생활에 입는 옷이 두 벌 있다면 그것도 없는 이웃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또 먹을 것이 있다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나누어주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공유하라는 뜻이다. 로마서 1:11절에서도 신령한 은사를 함께 공유한다는 말이 나온다. 로마서 12:8절과 에베소서 4:28절에서 "구제"라는 말로 번역된 말도 역시 공유하는 자라는 뜻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8절에서 바울은 너희를 사모하기 때문에 복음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공유하길 원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복이 두 벌 밖에 없는 사람은 사실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두 벌 중에 한 벌은 그것도 없어 헐벗는 사람에게 주라는 뜻이기에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가 헐벗고 있다면 내 옷이라도 벗어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함께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율법을 행하라는 뜻이지 쿰란 공동체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회개를 한 사람의 증거는 자기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