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7-8 요한은 도시 문명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손들이라 부르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생산하라며 하나님께서는 쓸모없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로마황제 티베리우스 재임 15년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자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회개의 침례를 통해 주님 오실 길을 곧고 다듬게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이 침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는 장면이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그가 말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말했다는 말은 반복적인 행동이 지속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말 말했다는 동사는 반복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고 일정한 기간동안 한 말이나 습관적으로 한 말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 두 번 말했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그렇게 말했는가 하면 요한에 의해 침례를 받으러 나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나온다는 말은 원어에서 바깥이라는 말과 온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나온다는 말은 한 떼의 무리들이 도시지역에서 광야로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깥으로 나온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문명지역에서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지역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무리에게 한 말인 것이다.
요한은 도시지역에서 광야로 나와 자신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던 무리에게 독사의 자손들이라고 불렀다. 당시 도시의 문명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헤롯당이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던 사람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이다. 특별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제사장의 가문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사장들이라고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3:7절에서 많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이 나왔다고 했던 것이다. 누가는 도시의 문명지역에 살다가 소문을 듣고 광야에 있던 요한에게 나오던 사람들을 무리라고만 부른 것이다. 요한은 특별히 도시의 문명지역에서 살고 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손들이라고 부른 것이다.
왜 요한은 도시의 문명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을 독사의 자손들이라고 불렀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불렀다. 특별히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런 자부심이 정말 강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사두개파 사람들을 절기와 제사들을 철저히 지킴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을 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을 향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라 독사의 자손들이라고 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자손들이라는 것이다. 독을 품고 남을 해치던 악한 습성이 출애굽 이후부터 말라기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구약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들에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구약성경은 이러한 독을 품은 악한 자들의 전기문과도 같다. 그러한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독사의 후손들과도 같은 자들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참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바로 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이다.
요한이 속했던 에세네파는 도시의 문명지역에서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리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헤롯당을 경멸하고 광야로 나와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러한 독사의 독을 품은 악한 사람들이 부정하기에 광야의 쿰란 동굴에서 기도와 말씀 중심으로 수도원의 수도사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요한이 처음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침례를 줄 때 먼저 요한에게 나온 사람들은 아마도 에세네파 사람들이나 도시 문명지역에서 쫓겨나와 광야를 떠돌며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자신이 선포한 메시지가 도시 문명지역에까지 전해져서 그들이 무리를 지어 나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놀랐으면서도 그들이 변화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누가 너희에게 장차 다가올 진노에서 도망을 가라고 보여주었느냐고 말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존귀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게 변화되기 어려운 독사의 자손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8절은 "그러므로 행하라" 라는 말로 7절과 연결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만들어내라는 말은 말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으로 행한다는 뜻이다. 특별히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이었기에 말과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는 누구보다 거룩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요한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로 가르치는 거룩 말고 사람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 행하는 거룩 말고 진짜 하나님 앞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만들어내라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7:15-20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며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하셨다. 따라서 요한이 합당한 열매를 만들어내라고 한 것은 겉으로 보여주는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거룩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너희 자신들 안에서 말하기를 시작하지도 말라고 한다. 자신 안에서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뜻하기에 생각하기를 시작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무엇을 자신들 안에서 생각하기를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는 아브라함을 우리의 아버지로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에서 독사의 자손이라고 한 말의 반대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어서 요한은 광야에 흔히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집어들고 "왜냐하면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말한다. 그 말한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돌들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될 수 있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광야에 굴러다니는 돌들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아재개그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람어로 돌이 "아브나야"이고 아들들은 "브나야"로 발음이기에 비슷한 말을 사용해서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문명사회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던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은 말로만 거룩을 외치고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거룩만 행했다. 그렇기에 요한은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브나야?"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나야들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어!" 라고 한 것이다.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면 이 돌들도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한은 도시의 문명지역에서 나온 무리들이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고 광야의 돌들만도 못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요한은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것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열매들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바울이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와도 같은 것일 것이다.
오늘날도 광야에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진정한 회개를 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가 쉽다.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은 돌멩이들로 아브라함 자손을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9:24절에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내가 갖고있고 누리고 있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도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며 말로만 거룩거룩 하지 말고 진정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자. 안그러면 우리는 쓸모없는 돌멩이들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