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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3:1-6

Dawn Word

누가복음 3:1-6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요한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2. 11. 16.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3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3:1-6 로마황제 티베리우스 재임 15년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자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회개의 침례를 통해 주님 오실 길을 곧고 다듬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의 부모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찾느라 걱정했다고 책망하자 소년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집 안에 있어야 할 줄 몰랐느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계속 순종했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길을 미리 준비하는 요한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1절에는 시간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는 AD 14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에 그 때는 AD 28-29년이다. 대헤롯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로마황제가 헤롯 안티파스를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도록 확정해 주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린 기간은 BC 4년에서 AD 29년이다. 그 동생인 빌립은 헤롯 안티파스보다 작은 영토를 받아 다스리다가 AD 34년에 죽었다. 드라고닛 지방은 다마스커스 남쪽 지역이다. 요한은 나중에 헤롯 안티파스에게 바른 말을 했다가 감옥에 갇혔고 처형이 되었다. 그렇기에 헤롯 안티파스에 관한 정보는 요한의 사역의 배경을 제시해 준다.

2절에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라는 시간 정보가 나온다. 안나스는 AD 6-15년에 대제사장으로 있었고 가야바의 장인이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직을 종신직으로 여겼지만 로마정부는 가야바를 해임시켜버렸다. 그러자 가야바는 자기 사위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던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려졌다. 요한이 있던 광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3절에서 요한은 요단강 근처의 모든 지역을 두루 다니며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했다. 회개라는 말은 요한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들과 연결시켜준다. 구약에서 회개란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선 백성들이 예언자들이 전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을 뜻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살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을 뜻한다.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침례란 침례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Nolland는 요한의 침례는 다가올 심판에 대한 상징적인 복종으로 이해되었다고 했다(Nolland, 142). Marshall도 요한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에게 침례를 준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은 심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Marshall, 136). Bock도 침례 의식은 유대교에서 일시적인 정결함을 얻는 것으로 계속 반복된 것이지만 요한의 침례는 다가올 구원을 준비하라는 초청이라고 했다(Bock, 109). 죄사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에 요한의 침례는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는 일이었다.

4절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다. 요한의 활동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광야에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침은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만들라는 것이다. 요한의 외침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기에 3절에서 나온 침례는 그 자체가 죄사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다.

개역은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그의 길을 곧게 만들라는 뜻이다. 사막의 길은 울퉁불퉁하고 바위와 같은 장애물로 인해 길이 구불구불해지기 마련이기에 그러한 장애물들을 없애고 평탄케 하는 것이 곧 길을 곧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개역은 장애물인 튀어나온 바위들을 없애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의역을 한 것이다.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라는 것의 반대는 걸려 넘어지게하는 걸림돌을 놓으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걸려 넘어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첫번째로 예고하셨을 때 마태복음 16:22절을 보면 베드로는 안된다고 예수님을 꾸지람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며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바로 주님의 길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걸림돌을 제거하여 곧은 길을 만들라는 것은 즉 우상숭배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자신의 생각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길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해 주실 것이다.

이어서 5절에서 어떻게 길을 곧게 하는지를 설명한다. 5절에 나오는 길을 곧게하는 작업은 그 토목공사의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다. 모든 골짜기들이 메워진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가득 채워진다는 뜻이다. 주님 오실 때 골짜기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가득 채워진다는 것이다. 또 모든 산과 언덕들은 낮아진다고 했다. 낮아진다는 말은 주로 겸손해진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높은 산과 언덕들은 교만한 마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납작 엎드려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쓴 것이다. 그 결과로 굽은 길이 곧게 되고 험한 길이 부드럽게 된다는 것이다.

6절은 그 결과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 예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셨다. 모두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거부하기에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토목공사를 해서 각자의 마음의 길을 곧고 평탄하게 만들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통해 각 사람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 누가는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요한의 침례 자체가 죄사함을 얻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는 요한의 침례가 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마음 안에 움푹 패여있는 깊은 골짜기들은 가득 채워야 하고 자기 생각과 고집은 뽑아버려야 한다. 높은 산과 언덕처럼 교만해진 마음을 납작 엎드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를 주관해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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