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3-35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시므온은 아이가 돌처럼 놓여지고 그 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과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칼이 심장을 찌르듯 그 속의 생각을 다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시므온은 성령께서 지시하신대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아기 예수를 보고는 그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영광의 빛이요 이방을 밝히 드러내시는 빛이시라고 선포했다.
33절은 원어에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은 부모라고 묶어서 번역했지만 원어는 새번역처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다수의 사본들은 아버지를 요셉으로 기록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고 요셉이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권위있다고 인정되는 4-5세기 대문자 사본인 Codex Sinaiticus 와 Codex Vaticanus와 Bazae Cantarigiensis은 분명히 아버지로 기록되어있다. 후대의 필사자들이 요셉으로 바꾸어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새번역은 요셉과 마리아가 시므온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다고 번역한 것은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개역에서 "기이히 여기더라" 라고 번역한 것을 고쳐서 "놀랍게 여기더라" 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전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뜻이지 "왜 저런 이상한 말을 우리 아기에게 하지?" 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2:18에서도 말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는 말이 나왔었다. 역시 천사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목자들에게 전했고 그것을 목자들이 전달하자 듣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깜짝 놀랐지만 2:19절에서 마리아는 그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되새겼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리아가 시므온이 또 다시 아기에 대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했다고 해서 또 놀라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다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주석가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놀란 것이 바로 앞에 나온 32절에서 시므온이 예수의 사역이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들에게도 비추는 빛으로 말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시므온이 말한 내용을 보고 놀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2:18절에서도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것에 놀랐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듣고 분석하여 놀랐다기 보다는 천사가 나타나서 전하라고 한 그 사실에 놀란 것이다. 33절에서도 두 사람이 놀란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시므온을 통해 또 다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놀람은 신적 계시나 기적에 대한 증언을 경험한 것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34절에서 시므온은 두 사람을 축복한 뒤에 특별히 그 모친 마리아에게 말한다. 원어에서는 "보라! 이 사람은 놓여져있다 많은 사람의 넘어짐과 일어남을 향하여" 라고 되어있다. 예수가 놓여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일어난다는 말은 예수를 돌로 비유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건물을 짓는 돌을 놓는 그림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는 신약성경 여러곳에서 예수님에 대해 사용되는 중요한 비유이다(롬 9:33, 벧전 2:6-8 눅 20:17).
또 비방을 받는 표징이 되게 하기 위해서 놓여졌다고 했다. 여기서 표적이나 표징으로 번역된 말은 상징이나 신호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는 상징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분이 비방을 받는 상징이라면 그분을 믿는 사람들 역시 모두 다 그렇게 비방을 받는다는 뜻이다. 넘어지게 한다는 말은 그렇게 예수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예수께 걸려 넘어져 멸망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반대로 일어나게 한다는 말은 그 분을 믿는 자들은 영으로 부활하여 그 반석위에 굳게서고 장차 몸으로 부활하여 그분과 영원히 살 것을 뜻할 것이다.
35절은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이라는 말이 장차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34절에서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한 것과 연결해 볼 때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더구나 이어지는 말은 그 결과 많은 심장들로부터 생각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에서 나오는 칼은 로마 군인들이 근접전 때 쓰는 짧은 칼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칼은 로마 군인들이 쓰던 긴 장검이고 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다(계 1:16; 2:12, 16; 6:8; 19:15, 21). 따라서 이 칼은 긴 칼로 각 사람의 심장을 꿰뚫어 그 심장의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각 사람의 속에 숨어있는 생각들까지 다 드러내서 보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새롭고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의 기초가 되는 돌로 놓이신 분이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걸려 넘어지는 장면이 복음서와 서신서들에 나온다. 그러나 동시 그분을 믿고 그 분의 제자가 되어 영생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히브리서 4:12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속사람을 찔러 쪼개시는 이유는 우리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그 분 앞에서는 아무도 그 생각을 숨길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만 거룩한 척 한다면 그것은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