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5-32 시므온은 성령께서 지시하신대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아기 예수를 보고는 그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영광의 빛이요 이방을 밝히 드러내시는 빛이시라고 선포했다.
이전 말씀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산모의 정결하게 하는 날이 차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주의 율법에 정한대로 산모의 정결례를 드리면서 기적으로 태어난 아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치겠다는 뜻을 표현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양을 하는 장면이다.
25절은 원어에서 "그리고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 한 사람이 있었다 라고 하면서 그 이름은 시므온인데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의롭다는 말은 앞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도 쓰였고 나중에는 아리마대 요셉에게도 쓰인 말이다. 완벽한 의로운 자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는 자라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경건하다는 말은 유대교 율법을 아주 조심스럽게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또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로라는 말은 이사야 40:1절의 영향을 받은 말이고 메시야의 시대에 오는 위로를 뜻한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란 메시야가 와서 그러한 소망이 성취되길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종말론적으로 회복시킬 것과 연관된 위로이다. 또 성령이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고 했다. 이는 시므온이 아기가 장차 그 백성을 회복시킬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고 또한 예언을 한 근원이 성령님이시라는 뜻이다.
원어에는 26절은 또한 그에게는 성령님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로 이어간다. 그 지시의 내용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시가 있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질 때 구약이나 신약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사도행전 10:22절에서도 "천사의 지시를 받아" 라는 말에서도 나왔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는데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했기에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위로인 것이다.
27절은 그가 성령님 안에 있으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마침 부모가 율법이 정한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28절에서 시므온은 아기를 그의 팔 안에 받아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다. 이 노인은 드디어 성령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9절에서 시므온은 "이제 당신의 종을 놓아주시는 군요 주인님! 당신의 말씀대로 평안히 말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시므온은 자신을 종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종의 주인을 뜻하는 "주인님"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보통 하나님을 칭할 때는 보통 종의 주인을 뜻하는 데스포타 대신 주님이라는 뜻의 퀴리오스 라는 말을 쓴다. 노예의 주인은 충성을 다해 자신을 섬긴 종들을 자유민으로 해방시켜주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시므온 자신이 충성을 다했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으니 이젠 평안히 이 세상을 떠나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30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되기에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29절에서 말한 주인님께서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시고 떠나가게 하시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므온은 실제 구원을 본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 안에 있는 장차 이루어질 구원을 본 것이다. 아기 예수가 자라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바라본 것이다.
31절도 30절과 계속 연결된 말이다. 그 구원은 모든 백성의 얼굴 앞에 준비한 것이라는 것이다. 개역에서 만민이라고 번역한 것은 이방 족속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모든 이스라엘의 얼굴 앞이다. 얼굴 앞이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라고 번역해서 모든 이방 민족들로 오해하게 하면 안된다. 바로 이어지는 32절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바로 앞에 함께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이방 민족들은 멀리서 그 빛을 보고 나오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32절에서 이방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빛이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빛이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라고 했다. 영광이란 곧 빛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빛이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라고 했다. 어두운 이방 세계에 멀리서 빛을 비추셔서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는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으로 걸어나오는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시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제 자신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했음을 깨달은 뒤에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 것이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 분이 그 백성들과 함께 있는 영광의 빛이요 이방 사람들을 그 빛으로 드러나게 하는 분이라고 선포하는 일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사명을 다하는 날 시므온처럼 사명을 다했다고 기뻐하며 평안히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