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2-24 마리아와 요셉은 산모의 정결하게 하는 날이 차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주의 율법에 정한대로 산모의 정결례를 드리면서 기적으로 태어난 아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치겠다는 뜻을 표현했다.
이전 말씀에서 목자들은 자신들이 천사에게 들은 말씀을 가서 확인해 보고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들은 메시지를 전했을 때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은 놀랐지만 마리아는 마음에 간직하고 깊이 생각했다. 팔일 째에 아기에게 할례를 주고 천사가 말한대로 아기 이름을 예수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정결예식을 치르는 내용이다.
개역에서 22절은 결례의 날이 찼다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새번역처럼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찼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정결하게 되는 날은 레위기 12:8절을 보면 아이를 낳은 여인이 정결케 되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찼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들이라는 말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사본 필사자들도 인식한 증거를 볼 수 있다. 5세기 대문자 사본인 Bazae Cantabrigiensis를 비롯하여 몇 개의 후기 소문자 사본들에는 아기가 정결하게 되는 날로 보고 그들을 그로 바꾸어 기록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사본들은 분명히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다. 필자는 그녀의 정결하게 되는 날이라고 되어있는 사본의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이는 요셉이 마리아와 접촉했기에 둘 다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산모와 아기가 함께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가 그들이라고 기록한 것은 산모의 정결례와 아기의 헌아식을 하나로 묶어 기록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특별히 사무엘 1:28절을 근거로 이 아기가 사무엘처럼 주를 위한 사역에 바쳐진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23절은 22절에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라고 한 말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에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출애굽기 13:2절과 13:12절에 나온대로 처음 난 새끼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고 한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지파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민수기 3:46-47절을 보면 성전에서 섬기기 위해 필요한 레위인의 숫자보다 더 많으면 한 사람 당 다섯 세겔씩 속전을 내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은 레위지파가 아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기를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친 사무엘의 예를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24절에서는 주의 율법에서 말씀하신대로 산비둘기 한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마리를 희생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산모의 정결례를 위한 법을 설명한 것이다. 레위기 12:6절에서는 어린 양과 집 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가져가라고 했는데 요셉은 가난했기에 비둘기만 드렸다는 것이다. 이 제물들은 산모인 마리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제물이다. 아기는 정결하게 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한다는 뜻으로 데려간 것이 분명하다.
마리아와 요셉은 마리아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해야하는 날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태어난 아기도 데려가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드리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기적으로 태어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한나처럼 마리아도 그렇게 아기를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치겠다는 뜻으로 함께 데려간 것이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신 것과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와서 말해준 것을 간직하고 감격에 차서 자신의 정결례를 드리는 날에 아기를 데려와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