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7-66 때가 차서 엘리사벳이 아이를 순산하게 되었고 팔일만에 할례를 하러 온 친척들이 전통을 따라 이름을 지으려고 했을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요한이라 한다고 했고 그 뒤 사가랴가 다시 말하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전 말씀에서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팔로 교만한 자들은 흩으시고 비천한 자들은 그 강한 팔로 붙잡아 주시는 분이라고 찬양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의 출생에 관한 내용이다.
57절은 엘리사벳이 해산할 때가 차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그리스어식 표현이 아니기에 창세기 25:24절과 비슷한 히브리어식 표현이다. 아이를 갖지 못한 노인이 임신을 한 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데 때가 차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더 큰 은혜이다. 고대에는 자연분만을 하다가 산모가 죽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이다. 58절에서는 이웃과 친척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웃과 친척들이 들은 소식은 주께서 그의 자비를 엘리사벳과 함께 크게 하셨다는 소식이다. 노인이 임신을 한 것도 주님의 자비인데 때가 차서 아들을 순산한 것은 더 큰 자비이다.
59절은 아이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하러 온 사람들이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하려고 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우리와 같이 태어난부터 하루라고 했기에 팔일만이라는 말은 일주일 후라는 뜻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5절에서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것을 자신이 흠없는 유대인이라는 주장을 할 때 썼다.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만이 흠없는 유대인이라는 증표를 가진 것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의 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21:3절과 25:25-26절을 보면 아이의 이름은 태어날 때 짓는 것이다. 할례를 받을 때 이름을 짓는 것은 초기 유대교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전통은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의 문화에서 7-10일에 아이의 이름을 짓은 것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60절에서는 아이의 어머니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안된다며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1:13절에서 천사가 사가랴에게 알려준 것이지만 이는 새로운 기적이라기 보다는 엘리사벳이 사가랴와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61-62절에서 할례를 행하러 온 친척들이 말하기를 친척들 중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이가 없다고 반대를 하며 아이의 아버지에게 아이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지 손짓으로 물어보았다. 63절에서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하여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썼다. 그래서 질문한 친척들은 모두 놀랐다. 모두가 놀란 이유는 전통을 따라 친척들의 쓰는 이름을 쓰지 않고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하자 놀랐을 것이다. 어쩌면 말을 못하는데 두 사람의 견해가 일치하는 것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64절에서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했다. 말을 하지 못했던 사가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맨처음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천사의 말에 회의적이었던 태도는 다 떠내려가고 새로 회복된 기관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65절에서는 이러한 놀라운 기적의 소문을 듣고 근처에 사는 자들이 다 두려워했다.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문이 온 유대 산중에 퍼졌다고 했다.
66절에서는 듣는 사람들이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한 말을 들은 것을 마음에 간직하며 장차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까? 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하기에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서 벙어리가 되었었다. 이제 천사의 말이 그대로 성취되고 아이의 이름을 천사의 말에 순종하여 요한이라고 한다고 하자 다시 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통해 사가랴의 마음에 가득차 있던 의심의 안개는 사라지고 확신에 차서 맨처음 한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마음에 의심이 있을지라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때 우리도 기적을 체험할것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