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7-80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대로 구원자를 일으키셨는데 아침해가 어두운 온 땅을 비추듯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고 그 일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 요한을 주셨다고 했다.
이전 말씀은 때가 차서 엘리사벳이 아이를 순산하게 되었고 팔일만에 할례를 하러 온 친척들이 전통을 따라 이름을 지으려고 했을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요한이라 한다고 했고 그 뒤 사가랴가 다시 말하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을 한 내용이다.
67절은 다시 말하게 된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했다는 것이다. 68절에 나오는 예언의 시작은 "찬송 받으실 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구절은 구약에서 흔히 나오는 표현인데 특별히 시편의 결론 부분에서 많이 나온다(시 41:13; 72:18; 106:48). 찬송의 근거는 그 백성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찾아와 주셔서 속량해주셨다는 것이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근거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새번역 69절은 우리를 위하여 능력있는 구원자를 일으키셨다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는데 원어는 개역처럼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 라는 뜻이다. 뿔은 강함이나 힘의 상징이기에 그 의미는 물론 능력있는 구원자를 일으키셨다는 뜻이다. 이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이지만 구원의 뿔이라는 이미지 자체는 전쟁에 능한 군사적 지도자이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고 잘살게 해 줄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기다린 것이다. 그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했기에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을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그 뿔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의 상징이지 세속적인 전쟁 영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70절은 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예언자의 입이라는 말은 사도행전에도 나온다(행 1:16; 3:18, 21). 사도행전에서는 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성취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 승천하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예언한대로 성취된 것이다.
71절에서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 구원은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의 손에서 건져내시는 것이다. 사가랴를 비롯하여 당시 유대 사람들은 원수와 미워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내신다는 의미를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구해주시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들과 미워하는 자들의 손이라는 표현은 특정한 정치세력을 뜻하는 말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주는 것을 뜻했다면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비유를 사용했을 것이다.
72절은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행하셨다고 말한다. 자비라는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 라는 말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상들이 불쌍해서 동정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길로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끊임없이 용서하신 것을 뜻한다. 또 이어서 그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말도 역시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언약을 지키신 것이라는 뜻이다. 73절은 그러한 한결 같은 사랑으로 끊임없이 용서하시며 사랑하신 근거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74절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근거로 자신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없이 섬기게 하셨다고 했다. 개역에서는 두려움없이 섬기게 하셨다는 말을 75절에 두었지만 원문에는 새번역처럼 74절에 있다. 섬긴다는 말은 본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셨는데도 두려움없이 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수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원수들이 자신들을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다. 대적들로부터 구원 받았다는 말이 대적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뜻이다.
섬긴다는 말이 예배를 뜻하는 말이지만 예배란 모든 일상의 삶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75절은 "주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 우리의 모든 날동안" 이라고 한 것이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다. 의로움이란 하나님께서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을 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셨기에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의 모든 날동안"이라고 했기에 예배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
76절은 "그리고 너, 아가야"라고 부르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자신의 아들 요한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어서 주님보다 앞서 가면서 그 길을 예비한다고 했다. 이는 왕의 행차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지극히 높으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보다 앞서 가면서 그분이 오실 길을 평탄하게 다듬는 공사를 하는 감독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평탄하게 하여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오실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77절은 그들의 죄 사함 안에서 그 백성들에게 구원의 지식을 준다고 했다. 요한이 주는 구원의 지식이란 구원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는지를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로 주어지는 종말론적 구원을 얻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경험이다. 따라서 요한이 선포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지식이다.
78절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섬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어는 "하나님의 자비의 내장 때문에" 라는 뜻이다. 심장이 생각과 지식이 자리잡는 곳이라면 내장이란 감정이 자리잡는 곳이다. 하나님의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영어 번역들은 "the tender mercy"라고 번역해서 자비가 중심말인 것처럼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원어의 중심말은 분명히 자비의 내장이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이어서 새번역은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높은 곳으로부터 뜬 해가 우리를 찾아오게 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뜬 해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찾아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방문하신다는 뜻이다. 1:68절에서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찾아오신다는 말이 나왔다. 아침해가 떠오르듯 온세상에 빛을 비추러 오시는 참 빛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아침해로 비유된 메시야가 79절에서는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비춘다고 했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신 것이다.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일어나 그 빛을 향해 나아올 것이다. 그래서 이어서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한 것이다.
80절은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력해졌다고 했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고 했다. 나타난다는 말은 본래 공식적인 사명을 받아 취임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본래 의미를 따라 나타난다는 말은 사명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말이 본래 사명을 받는다는 전문적인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공식적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공식적으로 나타난다는 말로 번역했지만 이러한 단어를 쓴 것은 분명 요한이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 공식적으로 취임할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뜻도 포함하는 것이다.
사가랴의 예언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내장으로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던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빛을 비추셔서 그 빛을 따라오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의 길을 준비하는 일을 맡기시려고 노인인 자신들에게 기적적으로 요한이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가랴의 예언의 초점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의 자비의 내장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찬란한 아침햇살과 같은 빛되신 우리 주님을 보고 일어나 따라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