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6-56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팔로 교만한 자들은 흩으시고 비천한 자들은 그 강한 팔로 붙잡아 주시는 분이라고 찬양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 마리아는 간절한 마음으로 천사가 말해준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인사를 하자 엘리사벳의 뱃속의 아이도 기뻐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믿은 여자가 복이 있다며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46절은 마리아가 말하길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에서 찬양한다는 말은 크게 한다는 뜻이다. 1:58절에서는 큰 긍휼을 베푸셨다는 말에서 크다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이 말은 사도행전 5:13절에서 백성들이 사도들을 칭송했다는 말로도 쓰였다. 역시 사도들을 크게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만 쓰는 말이라기 보다는 크게 또는 위대하게 한다는 뜻이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을 높이거나 예수의 이름을 높인다는 말로 사용했다(행 10:46; 19:17). 2절에서 마리아 영혼이 하나님을 위대하게 하는 찬양을 할 때 마리아의 영혼도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했다고 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다.
48절은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으로 46-47절과 계속해서 연결되는 한 문장이다. 그렇게 마리아의 영혼이 하나님을 크게 하며 기뻐하는 이유는 주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비천함이라는 말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했다(창 29:32; 신 1:11). 그러나 이 말의 본래 의미는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말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마리아가 처한 비천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아마도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낮추는 마리아의 겸손한 태도를 나타낸 것일 것이다. 문맥으로 볼 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겸손히 낮춤으로 하나님을 더욱 위대하게 높이는 모습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마리아를 복이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49절은 왜 모든 세대가 마리아를 복이 있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새번역에서 힘센 분이라고 번역한 말은 스바냐 3:17절에서도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이는 앞에서 앞에서 하나님을 크신 분이라고 한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덩치가 큰 용사라면 힘도 센 것과도 같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에 힘이 센 분이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찬양하며 이어서 그 이름이 거룩하시다고 찬양한다. 시편 99:2절에서 여호와는 크고 거룩하시다는 말이 함께 나온다. 단순히 크고 능력이 많기만 하신 분이 아니라 거룩하신 분이시기도 하다는 것이다.
50절은 그의 자비하심이 그들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계속 지속된다는 것이다.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는 히브리어의 "헤세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자비하심이라는 말을 썼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듯이다.
51절은 50절과는 반대의 그림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지만 반대로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그의 팔로 권능을 행하셔서 흩어버리신다고 했다. 그의 팔로 권능을 행하신다는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할 때 그림언어이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다고 할 때 쓴 표현이다. 생각이 교만한 자들은 50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반대가 되는 사람들이다. 자기들의 생각 안에서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자신들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적들이다. 이런 자들은 그들이 강한 군대처럼 많을지라도 그 강한 팔로 치셔서 흩어버리신다는 것이다.
52절은 힘센 자들을 그 보좌에서 끌어내리신다고 했다. 이는 51절에서 하나님의 강한 팔로 군대를 흩어버리신 그림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새번역은 보좌라는 말을 보고 "제왕들"이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지만 원어는 힘센 자들이 보좌에 앉아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군대들을 흩어버리신 다음에 보좌에 앉아 그 군대에게 명령을 내리는 힘센 자들을 보좌에서 끌어 내리신다는 것이다. 반대로 비천한 자는 높이신다고 했다. 앞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낮추어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자신은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자들을 높이셔서 보좌에 앉게 하신다는 뜻이다.
53절에서 굶주린 자들을 좋은 것으로 실컷 먹게 하셨고 부자들은 빈손으로 멀리 내보내셨다고 했다. 굶주린 자들이란 앞에서 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비천한 자들이다. 부자란 앞에서 나온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던 교만한 자들이다. 고대에는 신분이 낮은 자들이 가난하여 굶주리는 자들이었고 신분이 높은 자들은 모두 부자였기에 그렇게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5:5절에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한 말씀과 표현만 다르고 같은 말이다.
비천한 자 굶주린 자의 그림이 55절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그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도우셨다는 말의 본뜻은 마주서서 붙잡는다는 뜻이다. 굶주리고 학대받아 쓰러져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강한 팔로 붙잡아 주시는 그림이다. 자비를 기억하셔서 붙잡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강한 팔은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강한 자를 보좌에서 끌어내리시는 팔이지만 비천하여 굶주리고 쓰러져 가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셔서 붙잡아 주시는 팔인 것이다.
원어에서 55절은 "아브라함과 그 씨들에게 영원히" 라고만 되어있다. 새번역은 "그 자비는" 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했는데 54절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씨들에게 주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주신다는 말은 미가 7:20절에도 나온다. 또 사무엘하 22:52절에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다윗과 그 씨들에 주신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주석가들은 54절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씨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56절에서 마리아는 석 달쯤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다가 돌아갔다.
오늘 말씀에서 중심되는 그림은 하나님의 강한 팔이다. 하나님의 강한 팔은 교만한 자들은 흩으시고 그들이 앉아있던 보좌에서 끌어 내리시지만 마리아처럼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하나님만 높이는 자들은 붙잡아 주시는 팔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우리 자신의 보좌에 성령님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는 그 아래에 낮게 엎드려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어 영원히 우리 주님과 함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