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4-18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부활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책망하시면서도 그런 제자들에게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이전 말씀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고 해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고 자기들에게서 나간 두 사람의 남자 제자들이 보았다고 해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그렇게 믿지 않던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기시는 장면이다.
그 후에 열한 제자들이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믿음이 없다는 말은 6:6절에서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할 때 썼다. 9:22-24절에서는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할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하자 책망하셨을 때 믿음없는 것 도와달라고 할 때도 나왔다. 이는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믿지 않는 상태이다. 제자들도 고향 나사렛 사람들처럼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마음이 무디다 또는 완악하다로 번역된 말은 심장이 딱딱하다는 뜻이다. 같은 말이 마가복음 10:5절에서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을 가지고 질문한 것에 대답하실 때도 너희 심장이 딱딱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했다고 했다. 심장은 본래 말랑말랑해서 신축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피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심장이 지식과 생각이 자리잡는 곳으로 생각했기에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잘못된 지식과 생각은 계속 내보내고 그 자리에 새롭게 수정된 지식과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장이 굳어져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받아들이고 낡은 지식과 생각은 내보내는 일을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믿지않고 놀라운 부활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15절을 보면 그런 제자들에게 만민에게 임무를 맡기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들이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버리지 않고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맡기신 것이다.
특별히 모든 세상에 들어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다. 만민이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모든 동물들까지 포함하는 말은 아니다. 골로새서 1:23절에 보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 이라 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도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든 피조물이란 말은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종족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16절에 보면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 했다.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고 정죄를 받는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전하는 자들의 말은 믿지 않았다. 다행히도 저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저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기에 믿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모두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기록된 증언들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으면 정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믿느냐 안믿느냐의 문제는 전하는 자의 책임이 아니라 듣는 자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한번 전해고 책임이 끝났다고 하면 안된다. 예수님도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믿지 않던 심장이 굳은 제자들까지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심으로 가르치시며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이어서 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이 나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를 것이다. 따른다는 말은 곁에서 따라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체험하는 것만이 아니다. 믿는 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곁에서 그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첫째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새로운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역사하시는 증거들이다. 믿는 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함께 보며 체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3-4절과 10:46절과 19:6절에 새로운 방언을 말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8-9절은 방언의 은사가 9가지 중 마지막 은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들을 자랑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은사들은 믿음의 초보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가장 초보적인 은사이고 최고의 은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고 그 능력을 주신 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18절에 나온 손으로 뱀을 집어도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 했다. 사도행전 28:3-6절에 보면 바울이 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항상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세번째는 환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라 했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표적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믿는 자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아나니아가 눈먼 바울에게 손을 얹었을 때 바울이 보게 되었다.
이 세가지는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만약 제자들에게만 주셨다면 제자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징이 따른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에게 이런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은 모두 이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면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징들을 주시는 것은 모든 믿는 자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믿는 자는 계속해서 복음의 전달자의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이처럼 복음의 증인이 되어 계속 전달하게 하려는 것이지 예수님의 부활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증인들의 증언인 말씀을 듣고 믿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기적을 통해 확신을 주시는 것은 계속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심장이 딱딱해져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에 매여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딱딱한 심장을 가지고 자기들 생각을 따라 살아가지만 믿는 자들은 부드러운 심장을 가지고 자기 생각은 내버리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받아들여 살아가며 그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