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9-13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고 해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고 자기들에게서 나간 두 사람의 남자 제자들이 보았다고 해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이전 말씀에서 여인들은 벌벌 떨며 정신이 나간채 무덤에서 뛰쳐나와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무서워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했지만 믿지 않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두 남자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전해도 믿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9-13절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믿지 않던 제자들이 나온다. 9절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살아나신 뒤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고 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라고 마가는 설명하고 있다.
10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에 갔다.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란 제자들이기에 제자들이 모여 슬퍼하며 울던 곳에 간 것이다. 마태복음 9:15절에 보면 예수께서 “혼인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신랑되신 예수님을 빼앗긴 제자들은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가서 소식을 전했다.
11절을 보면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마리아 자신이 목격했다고 전했는데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믿을 수 있다. 증인이 한명 뿐이고 그것도 증인으로 인정되지도 않던 여자였기에 그럴 수 있다고 백번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2-13절에 또 다른 증인들이 나온다. 이들은 제자들과 함께 있던 자들인데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나와서 시골로 걸어서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했다. 다른 모습이라는 말은 그들이 왜 처음에는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만난 분이 부활하신 예수라는 것을 깨닫고 나머지 제자들에게 돌아가서 전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두명의 제자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다.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두 제자들은 남자들이다. 게다가 함께 모여서 슬퍼하다가 두명이 먼저 시골로 떠난 것이다. 떠난 두 제자가 되돌아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선포했다면 믿었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합법적인 증인의 숫자인 남자 두명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은 세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세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마가복음은 실제 목격자들의 확실한 증언들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그 증언하는 내용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명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믿을만한 사람들이 실제로 목격하고 들은 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기록한 것인데도 말이다. 오늘날 마가복음을 읽거나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자기 앞에 나타나신다면 믿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한 불신앙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기 앞에 나타난다 해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아니면 본래부터 살아있던 존재라고 할 것이다. 믿음이란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말로 증언한 것을 믿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바로 실제로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증언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제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증인들이 증언한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믿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증인들의 증언이 기록된 마가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기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 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은 기적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과 우리들의 증언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말씀을 잘 듣고 배워 우리가 먼저 믿는 자가 되어야 증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