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8 여인들은 벌벌 떨며 정신이 나간채 무덤에서 뛰쳐나와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무서워하기만 했다.
이전 말씀에서 천사는 무덤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여인들에게 너희가 찾는 예수가 부활했다며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여인들이 무덤을 뛰쳐나와 두려워하는 장면이다.
이 천사를 보고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의 행동이 8절에 이어진다. “이 여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고 했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과 함께 그 이유가 나온다. 여인들이 무덤에서 나와 도망한 이유는 새번역에서 벌벌 떨며 넋을 잃었다고 번역되어 있다. 새번역에서 넋을 잃었다고 번역한 말은 본래 어떤 물건 따위를 내동댕이 쳤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먼저 너무 놀라 벌벌 떨다가 그만 정신이 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 여인들의 반응은 이상하다. 그렇게도 존경하던 예수님이었기에 죽는 자리까지 따라오며 순종했던 저들이다. 장사 지내는 것도 지켜보았던 저들이다. 안식일이 지나 날이 밝자마자 무덤으로 달려와 향료를 발라 드리려했던 저들이다. 흰옷입은 천사가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가신다며 그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 했다면 기뻐 달려갔어야 하다. 그런데 마가는 “그래서 그들은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했다. 왜냐하면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라며 끝을 낸다.
벌벌 떤다는 말과 정신이 나갔다는 말이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나 천사의 나타남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며 마가복음에서도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여인들 앞에 나타난 흰옷 입은 청년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나타난 천사이거나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 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 능력을 보고 벌벌 떨며 정신이 나갔을 수 있다.
원어에서 이어지는 8절 끝부분은 정말 이상하게 끝이난다. 원어는 그 다음에 "그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들은 계속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이라고 하면서 8절이 끝이 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뒤로 간 것은 계속해서 두려워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상한 것은 끝까지 순종했던 여인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가서 전하라는 명령도 거부하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대신에 계속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끝나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초기의 중요한 사본들에서는 여기에서 마가복음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마가복음이 전해지던 초기에 끝부분이 유실되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마가는 항상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부분은 정말 이상한 것이다. 새번역이나 개역은 그래서 16:9-20절이 본래 마가복음에 포함되었던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뜻으로 대괄호로 묶어놓은 것이다.
어떤 성경 해석자들은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단순히 한 문장을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전체를 결론지을 수 있다고 하며 마가가 의도적으로 8절에서 갑자기 끝을 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이는 마가가 갑작스럽게 끝을 맺은 것은 의도적이라며 제자들에 대한 책망을 생략한 것이 참신한 끝맺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가의 결론이나 청년의 말이 심한 책망이기에 생략한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마가복음 전체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 비추어보면 예수께서는 실패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용서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마가복음 끝부분이 초기에 유실되었을 것이라며 마가는 예수께서 미리 예견하고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7절에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거기서 그를 볼 것이라는 말 뒤에도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와야 한다는것이다. 또 여인들이 청년(천사)의 말에 불순종한 것은 여인들의 불순종을 공격한 것이 되기에 그 다음에 그러나 라는 말로 이어지며 제자들에게 전하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부활의 모습은 초기 설교의 한 중요한 요소이기에 부활의 모습이 빠진채 마가복음을 끝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했다.
만약 마가복음이 한편의 영화나 소설이라면 8절에서 끝나면 안된다. 보통 영화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예수님이 무덤에서 기다리셨다가 반가이 맞이하며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다. 여인들의 눈에서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흐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마가가 증언하는 것은 그러한 영화나 소설이 아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나 소설이라면 예수님의 부활하는 장면도 자세히 묘사가 되어야 하다. 우연히 그곳에 갔다가 부활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목격자를 만들어 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시는 장면에 대해서는 침묵하다. 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살리셨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실제 목격한 것과 증언한 것을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놀라서 명령도 무시한채 입 꾹 다물고 있는 모습으로 끝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4절에 나오는 엄청나게 큰 돌이 옮겨진 기적과 빈 무덤 안에서 만난 흰옷 입은 천사를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기 때문이다. 또 그 천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하니 또 다시 놀란 것이다. 그 천사가 제자들에게 전할 말을 아무것도 아닌 자신들에게 알려 준 것에 또 놀랐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은 당시 무시당하던 존재인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역사하신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고 천사를 통해 부활의 증거를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주님의 명령을 전하는 역할을 맡은 것도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말문이 닫힐 정도로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 닫힌 말문은 영원히 그랬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가는 이렇게 끝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8절에서 끝이 난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을 행하신 것이 된다. 이제 여인들은 당시 유대인 사회의 통념처럼 남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예수 부활의 소식을 직접 전하는 역할을 맡은 존재라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마가복음을 끝낸다면 당시 마가복음을 듣던 성도들도 여자들에게 이런 사명을 맡긴 것에 대해 기절할만큼 놀랐을 것이다.
마가복음이 16:8절에서 끝나는지 아니면 16:20절에서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16:8절에서 끝이 난다면 마가가 이렇게 갑자기 끝을 맺은 이유는 부활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부활이 끝이라면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둥켜 안고 기뻐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끝나야 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은 이제 온 세계 만방에 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부활의 소식과 함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그 복음을 온 세계 만방에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활이 끝이 아니기에 마가복음은 여인들의 갑작스런 놀라움으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요즈음 드라마에서 갑자기 끝이 나며 시즌 2를 예고하는 장면과도 같다. 시즌 2는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며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가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시즌 2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시즌 2의 등장인물들로 살고 있는 것이다. 시즌 2 최종회는 예수님 재림하심으로 끝이날 것이다. 그 날을 바라보며 우리도 우리가 받은 부활의 소식을 너무 떨려서 정신이 나갈만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파하는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