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50-52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갔는데 한 청년이 세마포로 된 옷을 입고 예수를 계속 따라가다가 잡히자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을 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공개적으로 잡지 않고 은밀하게 무장한 군인들을 보내 잡도록 한 것은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계속 따라가던 한 청년도 역시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갔다는 내용이다.
50절은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마가는 증언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목자를 치면 양떼들이 흩어질 것이라는 스가랴의 예언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14:27절에서는 모두 라는 말이 맨 앞에 있어서 모두를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두라는 말이 맨 뒤에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예언하신대로 “도망갔다”를 강조하고 이어서 “몽땅 다” 라고 한숨을 내쉬듯 기록한 것이다. 예수를 버리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부가 아니라 몽땅 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51절에서 이상한 내용이 나온다. 51절은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가고 있었다는 말은 잠깐 따라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이 청년은 대단히 용감하게도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청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요한 마가라고도 한다. 다수의 주석가들이 마가복음의 기록자인 마가가 자신의 모습을 숨겨놓은 것이라고 추즉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다. 또 어떤이는 이 청년이 입은 옷 때문에 부자였을 것이라 하고 10:17-22절에 나오는 예수님을 찾아왔던 공회회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자라는 것만 가지고 이 청년을 예수님을 찾아온 공회 회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중요한 것은 이 청년이 누구냐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 몽땅 다” 라는 말에 있다. 모두가 다 도망갔다고 했기에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흰 베옷을 입은 한 청년이 등장한 것이다. 몽땅 다 도망갔지만 한 용감한 청년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용감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던 이 청년은 무장한 무리들이 잡으려 하자 옷을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아모스 2:16절이다. 그 내용은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내릴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대해 예언한 내용이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용사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자도 벌거벗고 도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청년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 중에 가장 용감한 용사이다. 이 청년은 칼을 휘두른 자보다 훨씬 더 용감한 자이다. 다 도망갔는데도 혼자서 계속 뒤를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청년이 열두제자 중 하나가 아니라 해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배우던 제자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용감한 이 청년도 저들이 잡으려 하자 옷을 버리고 벌거벗은 채 역시 도망간 것이다. 이 청년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마가가 이 두 구절을 기록한 이유는 이렇게 용감한 청년도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부끄러움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단단히 결심해도 자신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청년이 입고 있던 옷을 한글 성경들은 “홑이불”이라고 했는데 이는 헝겊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주 가볍고 고운 최고급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예수님의 시체를 감쌌던 수의도 이것과 똑 같은 말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청년이 버리고 간 이 베옷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남기고 가신 수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정말 억지 해석이다. 이 옷은 값이 비싼 최고급 옷감으로 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최고 좋은 옷을 입혀서 보내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옷을 수의로 썼던 것이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청년은 부자였기에 좀더 용감했고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기회가 되면 구출하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잡히게 되자 옷을 벗어 던지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도망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한 후에 스스로 잡히셨는데 이 청년은 자신의 생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다가 실패하고 도망한 것이다. 모두가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다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사기 시대 뿐만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다 각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대부분의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세월 뒤에 돌아보면 실패했다고 평가를 내린다. 따라서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우리의 생각을 따라 가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죽기 쉽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