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30-31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도 자신은 절대로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예수님은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흩어질 것이지만 부활하신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자신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사오정 놀이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예언 대결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자 예수님은 두번째 예언을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예언에 반대해서 자신의 예언을 말한 베드로에게 예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라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때까지 말씀하시며 베드로에게 예언을 하셨다. “오늘 밤” 이라는 말은 이제 곧 그 예언이 이루어진다며 아주 임박한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말이다.
닭이 두번 울기 전이라는 말은 정확한 때를 나타내는 말이다. 닭이 운다는 말은 원래 실제로 닭이 운다는 말도 되지만 로마식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다. 이는 동이 트기 전 새벽을 말한다. 이 말은 로마군 위병들이 불던 트럼펫 소리를 뜻할 수도 있다. 13:35절의 “닭이 울 무렵” 이란 말은 바로 그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 말씀은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말을 써서 닭이 두번 울 때 라고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뜻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 닭이 우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어떻게 되었든지 이 시간은 동이 트기 전이란 뜻이다.
특별히 닭이 두번 울기 전이라는 말에서 두번이라는 말과 베드로가 세번 부인한다는 말에서 세번이라는 말은 말끝이 똑같다. 예수님은 닭이 두번 우는 것과 베드로가 세번 부인하는 것을 분명하게 비교하시려는 것이다. 두번 큰소리치는 닭은 이제 잠에서 깰 때가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번 큰소리치는 베드로는 아직도 잠자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더구나 세번이나 부인하는 것은 완전한 배신을 가리킨다. 베드로가 세번이나 큰소리치며 장담하는 것은 아직도 영적으로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 깰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예수님을 배신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완전히 잠에 빠져있으니 분명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하자 베드로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큰소리로 다시 말했다. 힘주어서 말했다는 것은 한번 말했다는 뜻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잔뜩 주면서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앞에서는 모두가 넘어질지라도 자신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번에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겠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걸려 넘어진다는 말은 비유적으로 표현한 그림언어라면 여기서 부인한다는 말은 앞에서 나온 비유의 뜻을 정확하게 말한 것으로 앞의 말의 메아리 같은 것이다. 베드로도 자신의 미래의 일을 말했으니 예언을 한 셈이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베드로는 이렇게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힘주어서 계속 말하다가 다른 제자들을 보면서 동의를 구했을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다 그렇게 계속해서 장담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을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은 앞에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되었다. 이미 그 예언이 믿을만 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의 말은 그대로 된 적이 없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예언은 증명되지 않았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예언은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계획을 거부하는 예언이다. 마치 하나냐가 예레미야가 선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을 거부한 것과도 같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예언 대결을 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의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오늘 말씀에 그 대결의 결과는 나와있지 않지만 마가복음 뒷부분에 그 결과가 분명히 나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은 지금까지 마가복음에서 계속해서 증명되어왔다. 특별히 오늘 말씀 바로 앞부분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말씀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나고 병든 자들도 치료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되었다라고 마가는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두차례 예언 대결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예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고난도 받아들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아시고 그대로 순종하시려고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으로 예언한 것이다. 자신들의 세상욕심과 이기심에 따라 호언장담하며 예언을 한 것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고난이 싫어서 거부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예언한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새로운 그리스도의 군사로 다시 시작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부터 부활하실 때까지는 제자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스가랴가 예언한대로 불로 은을 단련하고 금을 시험하는 것과도 같은 고난이었다.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나는 훈련기간이었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과 세상적인 욕망을 완전히 내려놓고 연단의 기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없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아무리 다짐을 하고 장담을 하며 큰소리를 치고 맹세를 해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통과하면서 그 고난의 너머에 있는 축복을 바라보고 나가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따라갈 수 있다. 그러면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천국잔치에 함께 참여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