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26-29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흩어질 것이지만 부활하신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자신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사오정 놀이를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빵을 찢어 나누어 주시며 이것이 나의 시체 조각이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마시게 한 뒤 언약의 피라고 하시며 장차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잔치에서 마실 때까지 다시는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모든 제자들이 다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자신만큼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는 장면이다.
26절을 보면 마지막 만찬을 마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부르며 올리브산으로 올라갔다.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성벽 밖에 있는 산이다. 거기에 올라가면 성전과 예루살렘 성 안의 모습이 다 보인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가르치시고 기도하시려는 것이다. 올리브산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스가랴 14:4절과 연결이 된다. 스가랴에 보면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 편 동쪽, 올리브 산 위에 발을 디디고 서실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게서 올리브산에 오르신 것은 스가랴의 예언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제자들에게 예언을 말씀하셨다.
올리브산에 올라갈 때 찬송을 부르며 올라갔다 했다. 여기서 부르신 찬송은 시편 113-118편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 때 시편 113-118편을 항상 노래했기 때문이다. 이 시편들에는 할렐루야 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113-114절은 유월절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드린 찬송이었고 115-118절은 만찬이 끝난 뒤에 불렀던 찬송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만찬이 끝난 뒤이기 때문에 115-118편을 불렀을 것이다. 115-118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늘 말씀과 연결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15편은 여호와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116편은 여호와께서 어떻게 복을 주시는지 노래하고 있다. 117편은 이런 하나님을 찬송하라며 찬송해야 하는 이유를 노래한다. 118편은 어떻게 찬양하는지를 노래하고 있는데 찬양과 간증과 감사로 노래하라는 것이다. 시편 118편에서 찬양하는 방법은 결국 표준적인 기도이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115-118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월절 만찬을 통해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십자가를 통한 새 언약을 맺으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 것 약속한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제자들의 고난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올리브산에 오르며 찬양한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것이다. 이는 바로 이서 말씀으로 예언하실 내용을 미리 노래한 것이다.
27절에서 예수님의 예언이 먼저 나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모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라고 하셨다. 걸려서 넘어진다는 말은 마가복음 4:17절에도 나온다. 마가복음 4:17절에서 예수께서는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은 환난이 오면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제자들은 모두 돌짝밭이었던 것이다. 그 중 으뜸가는 제자였던 베드로는 가장 심한 돌짝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죽으면 제자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라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이는 스가랴 13:7-9절에서 온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말이 스가랴에서는 양떼가 흩어진다는 그림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원어에서는 특별히 양떼를 강조하려고 양떼라는 말을 앞에 두어 강조하고 있다.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양떼들처럼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신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28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모두가 다 배신할 것이지만 그러나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는 말에 이어지는 “내가 살아난 뒤에” 라는 말은 원어에서 “내가 살려진 뒤에”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예수님을 살리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려주셔서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말에서 “먼저 가신다” 는 말은 마가복음 10:32절에서 “예수께서 앞장 서서 가시는데” 라는 부분에서 나온다. 이 말은 단순히 먼저 가 있겠다는 뜻이 아니라 앞장서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것처럼 앞장 서서 가시며 따라오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앞장서서 갈릴리로 가실 터이니 뒤 따라 오라는 말이다. 제자들은 흩어져 고향인 갈릴리로 각자 갈 것이지만 예수께서 앞장서서 가셔서 그곳에서 다시 제자들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흩어지지만 그 흩어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체험한 제자들이 모여 다시 시작한다는 소망의 메세지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셔서 제자들을 갈릴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다시 만나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목자인 예수님을 쳐서 죽게 하셔서 양떼인 제자들이 흩어지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양떼인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모이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의 공로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다.
스가랴의 예언과 예수님의 예언은 일관성있게 연결된다. 스가랴 13:7-8절에는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는데 온 땅을 치면 2/3가 죽고 1/3만 살아 남게 된다고 했다. 그 남은 1/3을 은을 연단하고 금을 시험하듯 불속에 넣어 시험한 뒤에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 이라 부르고 하나님은 ‘내 백성’ 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목자를 친다는 것은 목자를 죽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스가랴를 인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스가랴의 예언대로 목자인 예수님을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떼인 제자들은 흩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핵심 제자들이고 상징적인 숫자이다. 실제 제자들은 더 많이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대부분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났다. 12제자들도 물론 배신하고 떠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11제자를 비롯한 일부 제자들을 처음 만났던 갈릴리로 다시 소집하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자들이 받는 고난은 스가랴에 예언된 대로 금과 은을 불로 연단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고 낙심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자들이 잘한 것은 없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제자들은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들처럼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아 복음으로 온세상을 정복하는 군대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두 흩어진 제자들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자신을 보여주시며 새 소망을 주시고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로 삼아 주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공로가 아니다. 스가랴의 예언과 예수님의 예언에서 발견되는 일관성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제자들 모두가 배신하게 된다는 것은 제자들을 낙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소망의 예언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께서 주신 이 소망의 예언을 부인했다. 모두가 더 걸려 넘어지더라도 자신은 넘어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의를 자랑한 것이다. 베드로는 사오정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제자들이 흩어진다는 것에 있지 않고 부활하셔서 다시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흩어지지 않는다고 큰소리 친 것이다.
이는 8:31-33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죽을 것을 예언하셨을 때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예수님을 꾸지람하며 사오정 놀이를 한것과 똑같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셨는데도 인간적인 야망을 내려놓기 싫어서 예수님을 그렇게 사오정 놀이를 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책망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도 같다. 이번에도 역시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에 반대하는 예언을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가 가축의 멍에를 메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겠다는 예언을 하자 거짓 예언자 하나냐가 그 멍에를 꺾어버리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벨론 왕을 꺾어 버리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도 같다. 베드로는 아직도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과 자기 중심적인 목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자기 중심적인 예언을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한 연단을 말씀하셨는데도 베드로는 그 고난을 반대한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제자들 모두가 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흩어진다며 제자들을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용기와 소망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 소망은 제자들의 노력과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잘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과 욕심을 따라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를 다시 그리스도의 군사로 불러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중에 좌절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려는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