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4:3-5

Dawn Word

마가복음 14:3-5

여인의 헌신에 화를 내던 사람들

2022. 9. 10.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4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5 예수께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나 예수님의 머리에 값비싼 나드 향유를 붓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화를 내며 그 여인을 심하게 나무랐다.

이전 말씀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기회를 노렸지만 자신들이 누리던 세상 영광을 잃을까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중들 가운데서는 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영광을 쫓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다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미 세상 영광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뿐이다.

흔히 3-9절의 주인공을 옥합을 깨뜨린 여인으로 보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하면 본문의 문맥과 상관없는 전형적인 자의적 해석이 된다. 본문의 주인공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아니라 이 여인을 보고 화를 내던 사람들이다. 이 부분을 보면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뿐 만이 아니라 그 밖에 초대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책망하신 대상도 화를 내던 사람들인데다가 이들은 1-2절에 나온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똑같이 세상 영광을 추구하던 사람들이기에 이 부분에서 마가의 초점은 여인에게 화를 내던 사람들이다.

3절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식탁 앞에 누워계셨을 동안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병환자라는 말은 현재 나병환자가 아니라 과거에 앓다가 치유를 받은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은 과거에 예수께 치유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집에서 식사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여인이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등장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일 것이기에 난입이나 침입했다라고 해야할 것이다. 원래 향유는 초대 받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갈 때나 그 집을 떠날 때 집 주인이 손님에게 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그 집 주인이 아니고 식사중에 갑자기 향유를 가지고 침입한 것이다. 이 여인이 가지고 온 순수한 나드 향유는 인도로부터 수입한 아주 값비싼 향유이다. 이 향유에는 순수하다는 말과 값이 아주 비싸다는 말이 붙어 있다. 이는 정말 진귀하고 값비싼 최고급 향유라는 뜻이다.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이 부분의 가지고 왔다는 말과 깨뜨렸다는 말 사이에 연결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없다. 이 경우 숨 쉴 틈도 없이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는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인은 식사 자리에 침입하자마자 바로 그 향유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향유는 뚜껑이 없고 밀폐되어 있어 마치 주사약 앰플 같이 깨뜨려야 쏟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한번 열면 한번에 다 써야 하는 것이다. 또 이 여인이 들어왔다는 말과 예수님의 머리에 쏟아 부었다는 말 사이에도 역시 연결하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이 여인은 머뭇거리면서 옥합을 깨려고 하면 사람들이 미쳤냐며 못하게 말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들어오자 마자 뒤에서 다가와 순식간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 즉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있던 몇몇 사람이 화를 내었다고 했다. 몇몇 사람이란 말은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손님들일 가능성도 있지만 제자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들은 먼저 자기들끼리 화를 내며 말했다. 이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한 말은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다. 허비한다는 말은 원래 파괴한다 버린다는 뜻이다. 저들은 값비싼 향유를 마치 쓰레기통에 쏟아 버리는 것처럼 생각하며 아까워하고 있다.

예수게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세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예수님의 죽음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제자들은 세상 영광에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어서 5절에서 저들은 이어서 말했다.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라고 말했다. “이상” 이란 말은 일반적인 표현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상스러운 표현이다. 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거친 사람들이든지 아니면 화가 나서 자기들끼리 막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서도 화가 정말 많이 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었겠다는 것이다.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 1년 품삯이다. 마가복음 6:37절에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은 든다 했다. 요한복음 6:7절에는 이백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하겠다 했다. 남자만 오천명이면 실제는 만명에서 만오천명이 된다.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은 남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게 잡아 200 데나리온에 만명을 먹인다면 삼백 데나리온이라면 만오천명을 먹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미국식으로 말하면 일인당 5불씩 든다 해도 칠만오천불이다. 칠만오천불에 팔아서 홈리스 만오천명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자기들끼리 상스러운 말로 화를 내면서 대화하다가 끝에는 이 여인을 나무랐다. 나무랐다는 말은 아주 화가 나서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는 말이다. 마가복음 1:43절에서 “예수께서 나병환자에게 단단히 이르시고 곧 그를 보내셨다” 라고 할 때도 나온다. 이는 정말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저들만이 아니다. 그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중히 여기던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정말 거룩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들의 경건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 말은 그 향유를 자기들에게 기증했더라면 그것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고 그러면 진짜 존경을 받을 수 있었겠다 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 여인을 꾸지람한 이유는 자신들도 그러한 경건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싶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이 제자들이라면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생각하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대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처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저들도 그러한 존경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저들도 대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사람들 앞에서 경건을 자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저들도 역시 썩은 고기 덩어리를 지키고 있던 들개 같은 대제사장들 주변을 맴돌면서 노리던 하이에나나 똥파리 같은 사람들이었다.

오늘 말씀에서 대조되는 것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쏟아 부은 여인과 그것을 보고 화를 낸 사람들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섬기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던 사람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몇번이나 예고하신 죽음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여인 특유의 감으로 미리 느끼고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그 죽으심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세상 영광에 꽂혀 있었기에 예수님의 죽음 예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말씀을 마음에 담고 말씀을 따라 헌신하는 사람들보다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 차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에 있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며 헌금하고 섬기고 봉사를 한다면 이 여인을 보고 화를 내던 제자들과도 같다. 세상 영광에 관한 관심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될 수밖에 없다.

마가복음 새벽말씀 전체